[소부장 인사이트] 리튬이온 배터리 이전 작업, 충전율 기준 마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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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동서대학교 스마트모빌리티학부 교수(한국ESS산업진흥회 고문)

이차전지 화재의 본질은 소재 자체의 화학적 위험성에서 비롯된다. 전해질, 양극재, 분리막 등 주요 배터리 소재는 가연성과 산소 방출 특성을 동시에 지닌 복합위험물질로, 화재 발생 시 진압이 어렵고 연쇄 폭발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행 '위험물안전관리법'에서는 이들 소재를 지정위험물로 분류하지 않아 제도적 공백이 존재한다.

최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UPS 배터리 이전 중 폭발 사고는 또 다른 제도적 사각지대를 드러냈다. 11월 25일 대전경찰청의 화재 원인 발표는 작업 부주의(전원 미차단·절연 미실시)와 불법 하도급을 지적하는 데 그쳤다. 배터리 충전 상태(SOC:State of Charge)가 고위험 환경에서 적절히 관리되지 않았다는 점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현장의 과실을 규명하는 수준에 머문 것으로, SOC 관리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불완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번 사고는 개인의 실수라기보다, 배터리 이전 작업에 대한 SOC 관리 기준과 절차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UN 38.3 규정은 리튬이온 배터리 운송 시 SOC를 30% 이하로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잔류 전하에 의한 단락(스파크)과 열폭주를 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기준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는 운송 상황에 국한된 기준이며, 실제 작업 환경에서는 더 높은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

특히 이번 화재가 발생한 데이터센터와 같은 환경은 밀폐된 공간에 고전압 장치가 밀집되어 있고 작업 공간이 협소한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배터리 이전 작업 시 UN 기준보다 훨씬 더 엄격한 안전 기준이 필요하다. 실제로 SOC가 20% 이상일 경우, 배터리 상태에 따라 단락이 발생해 화재 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 필자는 UPS 배터리 이전 작업 시 SOC를 20% 이하 수준으로 방전한 후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기준(안)을 제시한다.

테슬라 등 해외 제작사는 서비스 매뉴얼에 '배터리 탈거 전 SOC 25% 이하 방전'을 명시하고 있으며, UN 규정과 연계한 작업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국내 제작사의 정비 매뉴얼이나 환경부가 발간한 '전기차 배터리 안전회수 및 해체·보관 매뉴얼'에서는 현재까지 SOC 방전 기준을 명확히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고전압 배터리 작업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기준이 국내 제도와 기술 문서에서 누락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제도적 미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미비는 단지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자원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이전 작업 매뉴얼, 국내 제작사의 정비 지침, 환경부의 배터리 해체 매뉴얼 등 전반적인 제도와 기술 문서가 충전율 관리 기준 없이 운영되고 있다. 이는 고전압 배터리 작업의 안전을 구조적으로 위협하는 요소이며, 제도 전면 개정이 시급한 이유다.

배터리 소재의 위험물 지정과 함께, 배터리 시스템의 운용·이전·폐기 전 과정에 걸쳐 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과 데이터센터 등 고위험 시설에서는 작업 전 SOC 관리, 방전 절차, BMS 로그 기록, 작업자 보호장비 착용 등 세부 지침이 포함된 작업 계획서가 필수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작업 실수나 제품 결함이 아닌, 제도적 공백과 기술적 미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구조적 사고다. 발주기관은 배터리 이전 작업에 대한 정확한 시방서 없이 계약을 진행했고, 감독기관은 배터리 이송·설치에 대한 국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제조사는 사용자 교육과 기술 안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 이처럼 책임이 분산된 상황에서는 사고 재발을 막기 어렵다.

기술은 진보해야 하고, 안전은 그보다 반 발짝 앞서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 인프라이지만, 그 잠재적 위험성은 제도적 대응 없이는 통제될 수 없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배터리 안전 기준의 정비와 위험물 분류 체계의 개편을 국가 전략 과제로 인식하고, 보다 과감하고 체계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박용성 동서대 스마트모빌리티학부 교수·한국ESS산업진흥회 고문 ahpy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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