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모른다”는 인정은 학습과 발전의 시작이지만, 그 지식이 어떻게 사용되느냐가 문명의 방향을 결정했다. 중국 명나라 정화 제독은 영국보다 앞서 대항해에 나섰지만, 방문한 나라를 정복하거나 식민지로 삼지 않았다. 반면에 유럽의 항해자들은 탐험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정복에 활용했다.
인류의 역사는 생존을 위해 피를 흘리던 '피의 시대'를 지나, 성장을 위해 쉼 없이 일하던 '땀의 시대'를 건너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눈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여기서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공감(Empathy)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있다.
과거처럼 피를 흘리던 '피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피를 흘리게 될 것이고, 성장을 위해 쉼 없이 일하던 '땀의 시대'를 계속 살아간다면 끝없는 분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73편과 74편에서 우리는 문명의 시작점인 '잉여'와 현대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계, 그리고 연합형 조직이라는 대안을 살펴봤다. 창업자 혼자 모든 책임을 지고 구성원은 불안에 떨며 생존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인공지능(AI) 가속 격차는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의 미션을 위해 협력하는 생태계다. 문명이 잉여에서 시작되었듯, 새로운 문명은 공생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 시작은 잉여의 순환이다.
자신의 잉여를 확인하라. 시간, 지식, 네트워크, 자본 중 무엇을 나눌 수 있는가. 매주 2시간의 멘토링, 축적된 업계 지식,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소개--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성장의 기반이 된다. 둘째, 협력의 프로토콜을 만들어라. 누가 무엇을 기여하고, 어떻게 의사 결정하며,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신뢰, 투명성, 기여의 순환, 다양성 존중--이 원칙들을 구체적인 규칙으로 만들어라. 이를 하지 못 한다면 당시의 잉여는 희석되고 이용만 당하게 된다. 셋째, 작게 시작하라. 2~3명의 신뢰할 수 있는 동료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라. 넷째, 지식을 공개하라. 시행착오, 인사이트, 도구들을 공유하라. 역설적이게도 지식을 독점할수록 고립되고, 공유할수록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온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공동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소규모 AI 스타트업들이 GPU 클러스터를 공동 임대하며 비용을 분담한다. 실패한 창업자가 다음 도전자의 멘토가 되고, 성공한 창업자가 초기 기업에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순환 구조도 이미 형성되었다.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협력자인 관계, 이것이 새로운 생태계의 모습이다.
우리는 잉여에서 출발해, 탐험과 집대성을 거쳐, 공생을 향한다. 기술은 협력 비용을 낮추었고, 연합형 생태계는 그 협력을 제도화할 방법을 제시했다. 오늘 우리는 누구와 무엇을 나누고, 어떤 프로토콜로 약속을 맺으며, 어떤 속도로 배우고 고쳐 쓰는지.
지금 우리는 AI의 가속 격차를 겪는 세상에서 공생 문명의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