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이블코인이 급성장하고 있다. 2024년 스테이블코인의 거래대금은 15.6조 달러(2경1996조 원), 시가총액은 1612억 달러(227조 원)로 지난 5년간(2020~2024년) 각기 연평균 98.7%와 116.8%의 폭풍 성장이다. 테더(USDT)와 USDC가 시장의 63%와 27%로 양분했지만, 최근엔 페이팔(PYUSD), 블랙록(BUIDL), JP모건(JPM Coin) 등 핀테크와 금융권의 대표주자들도 적극 참여하는 추세다. 2015년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테더 하나였는데, 2020년엔 7개, 2024년 말엔 약 50개까지 늘어났다. 특히 거래대금이 카드의 양대 산맥인 비자와 마스터카드 결제금액 합계(7.1조 달러)의 2.2배까지 늘어나서 글로벌 금융권 전체의 화두로 떠올랐다.
왜 이렇게 빠른 성장세인가. 전문가들은 첫째, 스테이블코인의 가격 안정성과 신뢰도를 꼽는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법정화폐에 '일대일'로 연동돼 있어, 코인이지만 화폐처럼 가격 변동성이 거의 없다. 또한 발행사가 발행액과 동일 가치의 자산을 담보로 보유하고 있어 신뢰도도 높다. 투자자와 사용자가 가상자산거래나 결제·송금, 자산운용 수단으로 활용하기에 좋단 얘기다.
둘째, 글로벌 결제·송금을 혁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의 하나로 블록체인 기반이다. 블록체인은 '탈중앙화' 구조로 은행 등 중개 기관이 필요 없고, 모든 거래가 공개된 분산원장에 기록된다. 따라서 은행 대비 시간과 수수료를 줄일 수 있고 투명성도 높아서, 거래 절차가 국내보다 복잡한 글로벌 결제·송금의 경우 그만큼 더 유리하다. 예컨대 은행을 통한 글로벌 송금은 SWIFT 등 국제 네트워크와 2~3개 중개 은행을 거치면서 평균 2~3일 소요, 수수료도 5~7%로 높지만, 블록체인의 경우는 거의 실시간 또는 늦어도 1시간 이내, 수수료는 약 0.1%로 훨씬 낮다.
셋째, 미국의 달러패권을 위한 '親스테이블코인' 정책도 주요인 중 하나다. 디지털 경제환경에서 많은 국가(134개)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통화 'CBDC'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CBDC가 도입되면, 국가 간 결제·송금은 CBDC들의 직접 교환만으로 충분하다. 그 경우 현재 국가 간의 결제·송금을 연결하는 중개 은행(correspondent bank)이 필요 없고, 따라서 중개 은행의 필수 통화인 달러 수요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달러패권 차원에서 미국으로선 긴장 국면인 셈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론 CBDC에 맞설 '디지털 통화' 대안이 절실한 상황에서 트럼프 2기 정부가 선택한 것이 스테이블코인이란 생각이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98%가 달러 표시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親스테이블코인' 정책으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활성화하면, 자연히 스테이블코인 매수를 위한 달러 수요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 의회는 스테이블코인 법안(GENIUS Act)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지급 결제 수단으로 명확히 하고 있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운영에 대한 라이선스·준비금·감사의 기준도 마련하고 있다. 한마디로 스테이블코인을 '글로벌 디지털 달러'로 육성하겠단 얘기다. 이외에 실물자산 토큰화(RWA)와 은행 계좌가 취약한 국가나 금융 소외 계층의 수요도 스테이블코인의 급성장에 한몫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용처별로 보면 스테이블코인의 탄생 목적인 가상자산거래가 가장 많다. 2024년 기준 가상자산 거래용 스테이블코인 거래액은 11.7조 달러(1경 6,497조 원)로 스테이블코인 총거래액의 70%다. 2위는 송금으로 1.6조 달러(2,256조 원)에 총거래액의 10%. 이는 특히 글로벌 송금이 지난 5년간(2020~2024년) 연 78%로 급성장한 데 힘입은 바 크다. 3, 4위는 상품구매결제와 DeFi(탈중앙 금융)로 똑같이 1.15조 달러씩, 비중도 각기 총거래액의 7.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발행 종류별로 보면 우선 담보형으론 달러 등 법정화폐 담보가 91%로 압도적이고,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담보가 3.5%, 금·은 등 실물자산 담보가 0.5%다. 담보가 아닌 알고리즘형은 테라·루나 사건으로 급감했다가, 최근 블랙록의 수익형 스테이블코인인 '비들(BUIDL)' 등이 성공하면서 비중이 4%로 올라갔다.
아무튼 스테이블코인이 이처럼 '금융의 변방에서 금융 중심'으로 이동함에 따라 국가별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유럽, 일본과 싱가포르는 이미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도입·시행하고 있고, 홍콩도 작년 말 법안을 발표, 올 여름경에 시행할 예정이다. 공통적 특징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이면서 결제 수단이기 때문에, 발행사 제한 등 대체로 엄격한 규제 체계라는 점, 디지털 달러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모두 자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1월 가상자산위원회의 보도자료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대한 논의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가상자산의 거래뿐 아니라, 송금, 상품구매결제 등 금융과 실물 경제·수출입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꼼꼼히 검토하되, 원화 스테이블코인 허용 등 글로벌 정합성을 갖춘 규제 체계를 신속히 마련해 주기를 기대한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