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AIDT로 소외된 학생들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자

◇줄어든 학급당 학생 수, 여전히 소외된 아이들

우리나라의 학급당 학생 수는 지난 수십년 동안 꾸준히 감소해왔다. 해방 직후 교실에 70여명의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초등학교의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20명 내외로, OECD 평균 수준이 됐다. 물리적 환경은 개선됐고, 교사 1인당 학생 수 또한 안정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교실 안 수업 풍경은 여전히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 개개인의 이해도와 속도에 기반한 수업이 아닌, 정해진 진도에 따라 일률적으로 진행되는 '평균 중심 수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산업화 시대 대량 교육 모델로,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방식으로 제공하되, 학습의 책임은 학생 개인에게 지우는 구조다.


학급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수업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다. 일부 학생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해 지루함을 느끼고, 또 다른 학생은 처음 접하는 개념을 따라가지 못해 학습에 흥미를 잃는다. 물리적 환경 개선이 곧바로 질적 교육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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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왼쪽)와 현재의 교실을 생성형 AI(챗 GPT)로 표현한 모습.

지금이야말로 수업 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규모 학급의 장점을 살려 '교사-학생' '학생-학생' 간 상호작용을 확대하고, 학생 개개인의 수준과 특성에 맞춘 맞춤형 수업을 실현해야 한다. 인공지능(AI) 기반 학습 도구와 디지털 콘텐츠 등 기술적 기반도 점차 마련되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를 교사 전문성과 연결할 때, 비로소 학급당 학생 수 감소가 교육적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AI 디지털교과서(AIDT), 수업 혁신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2025년 3월, 초·중·고등학교에서 AI디지털교과서(AIDT)가 학교의 자율적 선택에 의해 도입됐다. 종이책 중심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확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된 변화였지만, 단순히 포맷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이제 교과서가 학생 개개인의 학습 이력을 기억하고, 수준에 맞는 문제를 추천하며, 실시간으로 학습 피드백을 제공하는 '지능형 교과서'로 진화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변화는 교실 수업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기존의 교과서는 모두에게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평균 중심 도구'였다. 그러나 AIDT는 학습자의 수준, 속도, 흥미에 맞춰 콘텐츠를 조정할 수 있는 맞춤형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특정 개념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는 기초 개념을 보강하고, 빠르게 진도를 나가는 학생에게는 심화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하향 평준화'가 아닌 '수준별 학습'이 가능해진다. 이는 수업에서 소외되던 다수의 학생을 교육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구조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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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대구 용계초등학교에서 진행된 AIDT 활용 공개 수업에서 이주호 부총리, 강은희 교육감 등 참석자들이 참여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하지만 기술적 가능성이 곧 수업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AIDT의 활용 효과는 결국 교사의 역량과 수업 설계에 달려 있다. 교사는 수업 목표에 따라 어떤 기능을 활성화할지 판단하고, 학생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업을 재구성해야 한다. 즉, AI는 교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전문성을 확장하는 도구로 작동할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또, 디지털교과서가 단순한 '학습 관리 시스템'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콘텐츠 품질, 플랫폼의 안정성, 개인정보 보호 등 기술적·윤리적 요소들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특히 교사의 디지털 활용 능력 제고를 위한 연수 체계 마련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중요한 정책적 과제다.

AIDT는 한국 교육이 직면한 여러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적 해법이 될 수 있다. 진도 위주의 획일적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 맞춤형 학습이 일상화되는 교실. 그 변화의 가능성은 이미 우리 손안에 있다. 남은 과제는 이 도구를 어떻게 교육 철학과 실천으로 연결해 나갈 것인가다.

◇실수가 허용되는 영어 수업

교실 안에는 다양한 학생이 있다. 학습 속도가 빠른 학생도 있지만, 읽기나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 언어적 표현이 서툰 학생, 혹은 신체적 제약으로 수업 참여가 제한되는 학생들도 함께 앉아 있다. 그 중에서도 장애학생은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따라가는 데 구조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영어 회화처럼 청취와 발음, 표현 능력이 복합적으로 요구되는 수업에서는 소외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AIDT가 제공하는 기술적 가능성은 이러한 교육 소외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예컨대, AIDT를 통해 학생이 영어 문장을 말하면 AI가 발음, 억양, 표현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정교하게 교정해준다. 교사는 한 명 한 명의 발음을 일일이 피드백하기 어렵지만, AI는 개별 학습자의 말하기 데이터를 축적해 반복 학습과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은 특히 언어 표현이 느리거나 음성 지각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학생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존 교실에서는 친구들의 시선이나 빠른 수업 흐름에 압도돼 말하기를 포기하던 학생도, AIDT와 일대일로 상호작용하며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다. 또, AI는 학생의 발화를 기다려주고, 중단없는 학습을 지원하며, 실수를 비난하지 않는다. 이처럼 '실수를 허용하는 학습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AIDT의 가장 강력한 교육적 기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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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부대초등학교 김혜신 선생님이 AIDT 활용한 영어 수업에서 영어 발음을 교정받고, 학습 데이터를 교사용 대시보드로 관리하고 있다.

◇모두가 참여하는 수학 수업

수학 수업 시간, 교사의 설명은 빠르게 전개되고 칠판에는 복잡한 수식이 이어진다. 개념을 놓친 학생은 금세 다음 단계를 따라가지 못하고, 질문하기엔 눈치가 보인다. 이처럼 수업 속도에 적응하기 어려운 장애학생, 느린 학습자, 학습결손이 있는 학생들에게 수학 시간은 종종 '이해하는 시간'이 아니라 '소외된 시간' '참고 견디는 시간'이 된다.

AIDT는 이러한 문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AIDT는 학생 개개인의 이해 수준을 실시간 분석하고, 기초 개념을 반복 학습할 수 있는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수학의 기본 원리, 예를 들어 분수의 의미, 덧셈과 뺄셈의 관계, 도형의 구성 요소 등을 학생의 학습 속도에 맞춰 시각자료, 음성설명,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재구성해주는 것이다.

문제 풀이 과정에서도 AIDT는 단순히 정답 여부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풀이 과정의 흐름을 분석해 단계별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는 계산 실수, 개념 오해, 문제 이해 부족 등 다양한 오류 유형을 구분하고, 맞춤형 설명을 제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언어적 표현이나 추상적 사고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에게는 시각적 도식화와 단계별 안내가 결정적인 학습 도구가 된다.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는 정보 수업

AIDT의 개별화 지원 기능은 정보 교과에서도 유효하다. 정보 수업에서는 컴퓨팅 사고(Computational Thinking) 능력과 코딩 실습이 핵심인데, AIDT를 활용하면 학생의 코드 작성 패턴을 분석해 오류 유형을 실시간으로 진단하고 적절한 설명과 예시 코드를 제시할 수 있다. 교사가 모든 학생의 코드 흐름을 동시에 확인하기 어렵지만, AI는 이를 자동화하고 개별 맞춤형 코딩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의 자기주도적 문제 해결력을 키워준다.

또 AIDT 기반 코딩 환경은 별도의 유료 프로그램이나 소프트웨어(SW) 설치 없이 통합 플랫폼 내에서 구현되기 때문에, 학교가 개별적으로 코딩 툴을 구매해야 했던 행정적·재정적 부담도 경감할 수 있다. 이는 학교 간 교육 자원의 격차를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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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이문고등학교 황유리 선생님이 AIDT 활용한 정보 수업에서 코딩 오류를 교정해주는 AI튜터 기능과 학습 데이터를 교사용 대시보드로 관리하고 있다.

◇AIDT를 활용한 맞춤형 수업의 조건

AIDT가 교실에서 활용되고 있다. 각 학생의 수준에 맞춰 콘텐츠를 제시하고, 실시간으로 학습 경로를 조정해주는 기술은 이제 현실이 됐다. 그러나 기술이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교육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개별화 수업은 단순히 '다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 자체를 새롭게 조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별화 수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교사의 디지털 활용 역량이다. AI 기반 학습 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기술적 기능을 넘어서 교육적으로 해석하고 연결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둘째, 수업 시간 구조의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하다. 정해진 진도에 맞춰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업 구조에서는 AI의 분석 결과를 반영할 여지가 없다. 소규모 토론, 수준별 활동, 자기주도 프로젝트 등이 수업 시간에 유연하게 배치되어야 한다. 셋째, 학습 데이터를 읽고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학생의 수행 결과를 보여주는 리포트는 많지만, 이를 해석하고 수업에 반영하는 방법은 생소한 일이다. 개별 맞춤형 수업은 결국 '데이터 기반 수업 설계'와 '교사의 전문적 판단'이 결합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AI가 교실에 들어오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평균을 기준으로 설계된 수업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차이를 전제로 하는 수업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교사, 학교, 행정 시스템 모두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술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교육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기술을 활용하여 교육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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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필자〉정제영 교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을 맡고 있는 미래교육 전문가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4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사무관과 서기관을 거치며 교육정책 기획 및 집행을 수행했다.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해 교육학과장, 호크마교양대학장, 기획처장, 미래교육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과 학술정보 시스템의 디지털 대전환을 선도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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