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도체 간판기업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가 줄고 있다. 투자야 시황과 점유율에 따라 전적으로 회사 결정 사항이지만, 워낙 두 회사의 장래가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등 산업 경쟁력과 직결돼다 보니 각계의 우려가 있다. 더욱이 설비 투자가 당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1~2년 뒤 시장 가격과 경쟁력의 판도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가올 미래까지 어둡게 만들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시장 조사기관 세미컨덕터인텔리전스가 분석한 전세계 주요 반도체기업 자본지출(CAPEX) 예측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303억달러(약 43조9200억원)로 지난해에 비해 11%나 줄여 책정했다. SK하이닉스도 올해 112억달러로 전년 대비 4% 축소했다.
삼성전자는 좀처럼 뚫리지 않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속시원하게 늘어나지 않는 위탁생산(파운드리) 규모 속에 범용 메모리 주도권만 갖고는 시장 대응력이 떨어지고, 실적까지 나빠지다 보니 투자를 줄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SK하이닉스도 HBM은 선전에 힘입어 사상최대 실적 기록을 올렸지만 시장 수요를 봐가며 필수 설비투자만 보수적으로 밟아가고 있다.
이같은 우리 반도체 대표 기업들의 모습과 달리, 주요 경쟁사들인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은 공격적인 투자 확대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TSMC는 올해 설비 투자액이 400억달러로 삼성전자에 비해 100억달러 가까이 많을 뿐 아니라 전년과 비교해서도 34%나 늘려잡았다. 마이크론도 140억달러로 지난해 보다 73%나 확대하며 SK하이닉스 투자액을 추월하게 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자국내 투자 우대 정책에 제대로 올라탄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한국 반도체 기업과 해외 경쟁사들의 완전히 상반된 투자행보가 향후 1~2년뒤 생산 능력 저하 또는 열세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을 걱정한다. 당장의 실적이나 시장 판도에는 큰 변수가 안되겠지만, 지금과 같은 패권전쟁 속에 1~2년은 골든타임과 같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은 상대적 추격자라 할수 있지만, TSMC는 파운드리분야 우리 기업들이 추격자이기 때문에 더 격차가 벌어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 산업이든 사이클이 있고, 투자의 적기가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미래 경쟁력 위축을 넘어 상실까지 끌고 가는 것은 어리석고 국익에도 맞지 않다. 기술에 거의 전부가 달려있는 반도체 산업인 만큼,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기술 자신감 회복이 최우선이다. 하루빨리 투자의 시계가 확대쪽으로 돌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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