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3월 말 무역장벽보고서를 발간한다. 미국과 무역하는 국가들의 제도와 정책이 자국 기업에 차별적인 부담을 주는지를 평가한다. 미국 빅테크들의 이익단체인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는 작년 10월 디지털 분야 무역장벽에 대한 의견서를 USTR에 제출했다. 일반적으로 USTR는 미국 산업계 단체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왔다. CCIA는 한국과 관련해서 망 이용계약 공정화법, 정밀지도의 해외 반출 제한, 인공지능(AI)기본법, 방송통신발전기금 제도 및 법안이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고 USTR에 제출했다.
망 사용료 이슈는 2022년부터 유사한 형태로 문제 제기가 돼 왔다. 올해도 이해민 의원과 김우영 의원이 공동 대표 발의한 '망 이용계약 공정화법'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내용이 실렸다. USTR는 이 법안이 미국 빅테크를 타깃으로 해 망 사용료 지급을 강제하는 차별적인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쟁점 중 하나는 망 사용료 납부를 강제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한미 FTA에서 금지하는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하는지 여부다.
그런데 한국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 내용을 보면 이러한 주장과 반대다. 사업자간 자율적 협상을 우선하고, 망 이용계약이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을 부과하는 것을 사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적용 대상 또한 한국과 미국 기업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 FTA 위반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 빅테크의 한국 시장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심한 상황이다. 언론에 따르면, 국내 기업뿐 아니라 미국 빅테크들도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극히 소수의 초거대 빅테크만이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KT 대표는 KT 마저도 협상력이 없어 구글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변한 바 있다. CCIA 회원사인 구글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지만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네이버를 뛰어넘는 영향력과 수익을 얻고 있음에도 법인세는 네이버의 3% 수준인 155억원만 납부했다. 이러한 현황에 비추어 볼 때 한국 제도는 해외 빅테크에게 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호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을 더 분노하게 하는 것은 해외 빅테크들이 국내 이용자를 크게 차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는 미국, 일본,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출시하고 있는 가족요금제를 한국에서는 출시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4인 가족이 가족요금제를 가입하면 2만원이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5만9600원을 지불해야 한다. 또 유튜브 뮤직을 뺀 유튜브 라이트 요금제도 출시했지만 한국은 현재 제외돼 있다. 2023년 12월 유튜브는 한국 내에 제공하는 프리미엄 서비스 요금을 1만450원에서 1만4900원으로 42.6% 인상했다. 한국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은 일본보다 비싸졌다.
해외 빅테크는 한국 소비자를 차별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의 이익단체를 통해 미국 정부에 한국의 규제가 차별적이라는 왜곡된 보고서를 제출하고, 그 내용이 그대로 무역장벽으로 규정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한국의 제도를 비판하기 전에 자신들을 먼저 되돌아 보고, 한국 이용자를 미국이나 유럽 이용자만큼 대우한 이후에 한국의 제도를 비판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전세계적으로 무역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 국민과 기업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부와 국회는 빅테크들의 한국 이용자에 대한 차별을 적극적으로 시정하고, 극소수 빅테크의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minsooshin@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