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서른살 케이블TV, 거래체계 개선·로컬테크로 새판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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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 30년사

국내 뉴미디어 산업의 서막을 올린 케이블TV가 개국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95년 3월 1일 케이블TV는 방송의 다양성 원칙 구현, 보편적 시청권 보장, 방송·통신 융합 등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사상 최대의 경영 위기 돌파와 지역성 불씨 살리기가 과제로 남았다.

◇갈등 반복 재원 구조…거래 체계 제도 개선돼야

다매체·다채널 플랫폼으로 국내 뉴미디어 산업을 이끌던 케이블TV는 경쟁매체인 IPTV에 인수 합병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의 경쟁에 밀리면서 최악의 경영환경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당면한 과제로는 재원에 대한 거래체계 제도 개선이 제시됐다. 케이블TV는 사업자가 가입자 수신료와 홈쇼핑 송출수수료를 받는 대신 지상파에 재송신료(CPS)를,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프로그램사용료를 지급하는 재원구조다. 수신료는 30년간 제자리 걸음이고 홈쇼핑 송출수수료는 인하 요구가 나온다. 지상파 CPS와 PP 프로그램사용료는 갈수록 커져 재원 배분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케이블TV의 수신료 매출 대비 콘텐츠 사용료 지급비율은 지속 증가해 2023년 기준 약 90%에 육박한다. 합리적 기준 마련 없이 협상력에 의존한 대가 지급이 계속될 경우, 향후 몇 년 내 콘텐츠 사용료가 수신료 매출을 넘어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정부 부처 간 조율을 통해 지상파·종편·보도·일반PP 등을 모두 포함해 유료방송 수신료 매출액과 연동된 콘텐츠 대가 산정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에는 콘텐츠 가격을 정하는 원칙과 기준이 없다. 유료방송 대가산정 가이드라인은 업계 숙원으로 꼽히지만, 5년째 공회전이다. 정부 주도의 대가기준 마련이 어렵다면, 업계 차원의 대가기준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송출수수료를 둘러싸고 케이블TV 사업자와 TV홈쇼핑 사업자 간 갈등도 폭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딜라이브·아름방송·CCS충북방송 등 케이블TV 3사와 TV홈쇼핑업체 CJ온스타일 간 채널 송출 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하며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이 발생했다. 성장한계 사업자 간 자율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정부의 적극 개입 필요성이 제기된다.

업계는 상호 합의가 불가능한 기준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정 기준을 마련해 적용하도록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이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이드라인 항목을 명확히 해 최소한 합의 범위를 제시해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상호 신뢰하지 못하는 자료에 대해서는 정부 등 제3자가 자료를 제출받아 검증할 수 있도록 대가검증협의체 역할 강화도 주문했다.

객관적 요율 산정 모델 도입 필요성도 제시된다. K엔터테크허브에 따르면 유료방송 사업자 간 수수료 갈등이 극심한 미국에서는 객관적·투명한 협상 테이블이 필요해지면서 인공지능(AI) 기반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AI 기반 요율 산정은 실시간 시청 데이터, 광고 효과, 이탈률 등 다양한 지표를 정량화해 객관적 요율을 내는 접근 방법이다. 기존 협상의 불투명성과 분쟁이 잦은 구조를 개선하고, 블랙아웃 발생을 줄이는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변곡점 맞은 케이블TV, '로컬테크'로 새판짜기

케이블TV는 지역사업권 허가에 따른 공적책무(지역채널 운용, 보편성, 지역성) 의무를 부여받고 지역사회의 경제·문화·사회 등에 걸쳐 생활 밀착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 78개 권역에서 1222만 가구에 지역 채널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30년 변곡점을 맞아 케이블TV 강점인 지역성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지역성은 방송 공익성의 하위 이념이자 지역 방송 및 케이블 SO가 구현해야 할 최우선 가치로 여겨진다.

'로컬테크'로 진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사실상 케이블TV는 테크 기업으로 출발했다. 1995년 케이블TV는 지상파 독점을 깨고 다매체 양방향 방송 시대를 연 당대 최고 테크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로컬테크 기업으로 방향성을 설정하고 넷플릭스가 제공하지 못하는 지역 채널과 지역 콘텐츠에 집중하는 '글로컬' 전략 추진이 제시된다. 여기에 지역 뉴스와 정보를 AI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성을 살린 특색 있는 채널을 갖춘 FAST(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으로의 변모도 제안된다. 미국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의 경우 FAST+케이블TV 번들 'NOW TV'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출시해 구독자를 묶어두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는 “시청 트렌드 변화로 코드커팅이 가속화되며 유료방송 사업자들에겐 새로운 서비스 창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지역 이라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테크를 가미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로컬 테크로의 진화가 케이블TV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역성 강화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지역방송의 지역미디어로서 수행하는 공적책무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방안 마련이 요구된다. 케이블TV 업계는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방송법 개정이나 신규 미디어 법제 반영을 통한 지역방송 지원근거 마련 필요성을 역설했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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