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숨은 무기’로 활용, 통상 압박 가능성도 높아
국내 디지털·플랫폼 규제, 국내기업에만 역차별될까 우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인공지능(AI) 기반 플랫폼·디지털 산업을 무역 전쟁의 '숨은 무기'로 활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플랫폼 규제를 완화하고, 동맹국에게 정책 동조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같은 중간재 수출국은 기술·안보 이슈가 결합된 통상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도 규제 일변도인 기존 디지털·플랫폼 규제 환경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미국 빅테크를 포함한 초국적 기업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국내 기업에 역차별로 작용하고, 통상마찰까지 이어질 수 있어서다.
트럼프 행정부가 AI 산업 규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접근하는 점을 감안해 우리나라도 미국 주도 AI 생태계에도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면 미국 못지않은 AI 경쟁력을 갖춘 중국을 의식해 전략적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참석자]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이봉의 K플랫폼 미래포럼 공동의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가나다 순)
△사회=문보경 전자신문 플랫폼유통부장

◇사회(문보경 전자신문 플랫폼유통부장)=2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을 하고 가장 먼저 발표한 정책이 무려 우리나라 한 해 정부 예산을 넘어서는 720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AI 분야 인프라에 투자를 하겠다라는 것이었다. 임팩트가 상당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초기부터 강력하게 달리는 이러한 책들이 우리나라 플랫폼과 디지털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바이든 정부의 AI 행정명령을 폐지하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AI를 최고의 전략 산업으로 키우는 것은 이전 정부에서도 일관된 미국의 입장이었지만 트럼프 때에는 훨씬 가속화돼 미중 패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로 삼겠다는 선언 같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이라고 저희는 예상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기존의 인터넷 콘텐츠에 대해 회사들이 필터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활기찬 시장을 만들겠다라는 과감한 선언으로 보였다.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트럼프 대통령은 최우선 정책 어젠다로 대외 차원에서는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미국이 상대국과 무역 불균형을 수정하는 수단으로서 플랫폼 산업을 협상의 '지렛대(레버리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플랫폼 산업과 AI 산업이 지금 굉장히 빠르게 부상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트럼프 행정부 측에서 굉장히 광범위한 견제 정책을 펼칠 것이다. 한국과 같은 동맹이나 파트너 국가에 대한 정책 동조화를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이제 대놓고 수익을 미국으로 집중하겠다라고 하는 뜻이 있는 것 같다. 국내 규제 환경과도 충돌할 것 같다. 우리가 지금 추진하는 플랫폼 규제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라든지 온플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과연 이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USTR 대표로 선임된) 제이미슨 그리어는 작년 기고에서 한국의 규제 움직임이 우려된다고 얘기했다. 기술 경쟁과 안보 이슈가 결합돼 중간재를 많이 유통하는 한국 같은 경우에는 굉장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트럼프의 취임 일성은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느끼는 미국의 다급함과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이 '슈퍼파워'이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고, 그 문제점에 대한 보수의 위기의식이 발현되는 측면이 크다.
그 와중에도 합리적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AI 얘기다. 플랫폼 패권에서 AI 패권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기인데, 플랫폼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이 빅테크 중심으로 확실히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 AI는 그게 아니다. AI 맨 파워나 기술이나 상품화 속도나 아니면 데이터의 양 같은 부분에서 미국이 중국에 일부 분야는 밀린다고 할 정도로 양상이 다르다. 그것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AI 패권 경쟁에서 확실하게 앞서겠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도 냉철하게 정책을 짜고 대응하지 않으면 AI 시대에 'K플랫폼'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사회=우리 기업이 위기의 시점에서 규제 환경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평가가 있어야 될 것 같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최근 몇 년간 국내 플랫폼·디지털 기업에 대해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플랫폼·디지털 규제 환경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김용희=플랫폼은 국내외 구분이 없다. 외국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뭐 그게 꼭 외국산이고 그래서 규제를 받아야 되고 한국산을 보호해야 된다기보다는 그 행위의 관점이 중요하다. 넷플릭스를 예로 들면, 넷플릭스는 국내에 800억원에서 1조원 정도를 매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넷플릭스 규제 얘기가 계속 나온다. 이런 것들이 이제 분쟁화가 될 수 있다.
◇이승주=플랫폼 산업, 디지털 산업이라고 하는 용어 자체를 많이 쓰지만 그 산업의 성격 자체가 AI 기반으로 변화하고 있다. AI 기반 플랫폼 산업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야 한다. AI와 관련된 산업 분야에서 여러 가지 화두들이 있지만 압축적으로 얘기하자면 '혁신' 대 '안전'이다. 이미 업계에서는 이미 혁신 쪽으로 물꼬를 틀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이런 흐름을 더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축이라고 한다면 '개발' 대 '활용'이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여태까지는 대부분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는 사실 개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활용이다. AI 기반 산업을 활용하기 위해 규제에 대해 점검하고, 새 혁신이 필요하다. 국내 산업 생태계만을 생각하는 규제 프레임워크에서 벗어나 글로벌 밸류체인에 우리 AI 기업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그것을 위한 규제 개혁은 어떻게 할 지 고민해야 한다.
◇박성호=한국은 전통적으로 '관(官)'이 위에서 지도하고 통제하는 문화가 있다. 미국 같은 경우는 트럼프 본인이 사업가 출신이기도 하지만 상당수 사업가와 혁신 기술자들이 정부에 뛰어들었다. 민관 협력의 하나의 모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러웠다. 우리는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이끄는 모습을 보면서 양자가 분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분위기를 반영해 우리도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고 확고하게 철학을 세웠으면 한다.
◇이봉의=우리는 새 산업이라고 해도 결국 규제 논의가 먼저 시작되는 부분에서 정말 열악하다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AI도 마찬가지다. AI 기반 산업의 변화 내지는 AI 기반의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큰 흐름에서 우리는 규제 얘기가 먼저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생각보다 아주 스마트할 수 있다. 규제는 어디서 나오고 유지되느냐 하면 결국 사람이고, 공무원이다. 트럼프는 바로 연방 공무원은 신규 채용 금지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공무원 사회나 관료 사회의 파괴적인 혁신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파괴적 혁신을 트럼프 아니면 못할 것이다. 우리는 거의 최악의 규제 환경을 가진 나라인데 이런 논의를 시작도 하지 않고 있다. 규제 환경이 우리보다 낫다는 미국의 이런 혁신적인 부분을 눈 여겨 봐야 한다.

◇사회=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1기부터 시작해 바이든 행정부, 트럼프 행정부 2기까지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각 행정부별 플랫폼·디지털 정책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승주=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는 연속성과 변화가 모두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AI를 포함한 플랫폼 산업 전반에 대한 어떤 규제 중심적 접근의 경향을 보였다. 리나 칸(Lina Khan·미국 연방거래위원장)의 약탈적 가격 책정에 대한 위반 조사와 그것에 기반한 규제 정책에 대해 여러 가지 논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그걸 입법화시키는 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행정부 당시에도 이미 AI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런 과학 기술과 관련된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는 인사들이 대부분 1기 행정부 때 일했던 사람들이다. 1기 행정부의 정책 유산을 상당 부분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지금 공식적으로 하는 워딩들이 몇 가지 있다. AI 규제와 관련해서 '라이트 어프로치(Light approach)', 굉장히 가볍게 접근하겠다고 한다. AI 관련된 미국 혁신 기업을 '언리쉬(Unleash)' 하겠다는 표현을 그냥 말 그대로 풀어헤쳐 주겠다라는 것이다. 그것을 공공 부문에서 활용하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AI에 대한 라이트 어프로치라고 하는 것은 연속성 측면이 있고, 이것을 공공 부문에서 활용하겠다고 하는 것은 상당한 차별성이 있다.
◇이봉의=역사적으로 미국은 민주당 정부 때 독점 금지 정책이 강력하게 집행되는 경향이 있다. 공화당 정부에서는 집행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트럼프 정부는 공화당 정부이기 때문에, 독점 금지 정책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추세를 보일 것이다. 극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미국이 제조업과 서비스업까지 본인들 영토 안에서 다 하겠다는 점이다. 미국이 AI 원천기술에서 중국과 비교해 상당히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 평가다. 지금의 급박한 상황에서는 정부가 플랫폼과 밀착이 강화될 것이다. 머스크 역할도 그 연장선에서 나타난 모습이다.

한국은 소버린AI 기술 갖춘 몇 안되는 나라
◇사회=우리나라는 자국 플랫폼이 경쟁력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플랫폼의 영향은 국내에서도 많이 강해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 기업 영향력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는데, 우리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박성호=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AI 위원회가 그리는 청사진에 참여해 일부가 되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 역량에 더해 외교와 안보 역량이 총동원돼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각 부분에서 '골목대장' 같다. 과감하게 합병 회사를 만들든지, 연합을 만들든지,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몸체를 만들어 시장 파이를 나눠야 한다.
◇이승주=세계적인 차원의 AI 생태계와 연결성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한국은 '소버린(Sovereign·주권) AI' 같은 기술을 갖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를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미국의 핵심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미국의 글로벌 어젠다에 한국이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줘야 된다.

◇김용희=이미 한국의 연구개발(R&D)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했을 때 굉장히 높다. 절대적인 규모에서 투자가 부족하지 않다. 아쉬운 부분은 투자나 거래, 인수합병(M&A) 등 영역에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매니지먼트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정당한 평가를 못 받는다. 기업이 절대적인 규모를 키워야 하는 시점이다. 최소한 아시아 '넘버 원' 수준으로 규모를 키워야 한다.
◇이봉의=미국 빅테크의 영향력이 크고 더 커질 것이라는 것은 이견이 없다. 가까이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너무 모른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중 간 정보 교류도 줄었다. 중국의 플랫폼 내지는 AI의 수준은 미국에 버금간다. 우리는 어느 한 쪽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 미국의 밸류체인에 들어가더라도 중국과 완전히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내 시장에서는 토종 기업이 선전한다. 우리의 자생적인 생태계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제2의 네이버, 카카오가 나올 수 없다. 신규 창업한 스타트업들이 현장 힘으로 안 되면 적어도 비슷한 업종끼리 연합해야한다. 공동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매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