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정국 불안을 딛고 1%대의 상승세를 탄 가운데 환율이 한국 경제의 최대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지속적인 강달러 기조 속에 급등한 원·달러 환율이 어느 수준에서 안정화될지 여부를 장담할 수가 없어서다. 이미 내년 1%대 저성장이 예고된 만큼 외환시장 불안이 한국 경제에 더 강한 하방 압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일 이후 지속 상승해 나흘째 1430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주간 외환 거래시장에서는 상승세가 제한되고 있지만 유럽, 미국의 외환시장이 열리는 오후·자정 무렵 급등한 뒤 익일 개장 직전에야 안정세를 보이며 상승 폭을 좁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전일 발표한 미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치에 부합하면서 19일(현지시간)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커졌음에도 원화는 여전히 약세다. 통상적 상황이라면 금리 인하가 자국 환율(달러)의 약세를 가져오지만, 유독 한국에는 그 영향이 미치지 않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0.3원 내린 1431.9원으로 주간 거래를 종료했다. 여전히 1430선 윗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미국 CPI 서프라이즈는 없었으나 내년 연준 금리 인하 경로가 보다 완만해진 영향에 달러 강세가 전개됐고 여기에 중국이 위안화 약세 허용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에 위안화 약세 부담까지 겹쳐 원화 약세 압력이 심화됐다”면서 “최근의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환율은 하락 재료보다는 상승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인 내년부터다. 지금처럼 정치적 불확실성이 풀리지 않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1430원선에서 계속 등락할 경우 원화 약세 압박은 더욱 거세질 수 밖에 없다. 심리적 저항선인 1450원선을 돌파해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를 가능성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환율이) 당분간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면서 최근의 환율 흐름을 우려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취임 이후 추가적으로 나타날 원화 약세 압력으로 인해 2025년 상반기 달러-원 환율 레벨이 올라갈 수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달러-원 환율이 1400원 초반대로 안정돼야 내년 환율에 대한 부담이 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국 불안으로 인한 원화 약세 압박은 한국의 성장 경로에도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 그나마 수출기업의 경우 원가 상승으로 인해 영업이익이 다소 줄더라도 외화순자산이 큰 제조업을 중심으로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내수기업의 경우 수입원가 상승에 따른 영향을 직격탄이 될 수 밖에 없다.
정여경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소비 및 해외여행객 축소로 한국 2024년 GDP는 0.04%포인트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환율 상승이 내수 서비스업의 마진율 축소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날 증시는 1% 넘게 상승하며 강세를 보였다. 코스피는 전일 대비 39.09포인트(1.60%) 상승한 2481.60, 코스닥은 7.40포인트(1.09%) 오른 683.32로 장을 마감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