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74〉AI의 환각, 결함이 아닌 창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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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지난 7월 산업자원통상부는 인공지능(AI) 디자인 확산 전략을 발표하며 AI와 디자인의 융합을 통해 전 산업의 디자인 활용률을 현재의 37%에서 60%로 높이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소비재 디자인, 공학 부품 설계, 제조공정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AI를 활용한 혁신을 기대케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려면 디자인 저작권, 데이터 프라이버시, 윤리적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법적·제도적 준비가 필수적이다. 특히, 생성형 AI가 생산하는 콘텐츠가 원작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데이터 오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창의적 혁신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생성형 AI는 텍스트, 이미지, 음악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는 AI의 하위 분야다. 이 기술에 관한 주요 담론은 인간의 능력을 얼마나 잘 모방할 수 있는지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처럼 대화하는 챗봇이나 사실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는 도구들은 AI의 주요 가치를 인간과 얼마나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는가에 두고 있다. 이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엑스 마키나 같은 대중문화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이러한 작품들은 AI가 단순히 인간의 작업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인간 고유의 특성을 침범할 수 있다는 사회적 불안을 키워왔다.

하지만 AI가 단순히 인간을 모방하거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만 사용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AI는 예기치 않은 가능성을 창출하고, 창의적 사고의 경계를 확장할 잠재력을 지닌 존재다. AI가 생성한 예상치 못한 결과, 흔히 '환각' 또는 '결함'으로 간주되는 결과물도 새로운 통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AI를 도구 이상의 존재로 재평가해야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가 주창한 수목적 사고(arborescent thinking)와 근원적 사고(rhizomatic thinking) 개념은 AI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수목적 사고는 나무처럼 계층적이고 선형적이며, 사전 정의된 경로를 따르는 사고 방식이다. 이는 예측 가능한 결과와 기존 시스템의 정교화를 중시하며, AI가 사용자가 설정한 목표와 구조 내에서만 기능하도록 제한한다. 반면, 근원적 사고는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의 조직처럼 분산적이고 유동적이며, 다중성과 예상치 못한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이는 기존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유도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수목적 사고가 기존 구조와 패턴에 의존함으로써 창의성을 억제한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나무를 싫어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반면, 근원적 사고는 AI가 단순히 인간의 도구가 아닌 창조적 동반자로 기능하도록 하는 데 필수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추상 미술가 잭슨 폴락은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탈피해, 무작위성과 움직임을 활용한 '드리핑 기법'을 개발했다. 그는 물감을 흘리는 순간순간 영감에 따라 직관적 결정을 내리며 창의성을 극대화했다. 이는 근원적 사고가 실질적으로 창의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세계적 제품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유명 가구 브랜드 카르텔(Kartell)과 함께 제작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19에서 공개한 A.I. 의자 또한 이러한 근원적 접근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AI는 최소한의 자재와 에너지를 사용해 새로운 의자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수백만 가지 가능성을 탐구하며, 인간이 고려하지 못했던 유기적 형태를 제안했다. 이는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기보다는 디자인 과정을 향상시키고 새롭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새로운 주체로서의 역할이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AI는 기존의 경직된 사고와 사회 구조에 도전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연결과 적응력을 요구하는 존재로 자리 잡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육 분야에서는 각 학생의 고유한 학습 패턴에 따라 예측불가능하나 효과적인 학습 경로를 제시하거나 건축이나 도시 설계에서는 기존 효율성 중심 접근을 넘어, 인간의 감성과 자연의 유기적 패턴을 반영한 새로운 공간 구성을 제안할 수 있다. 기업들은 이미 AI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수평적 네트워크 형태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예술가들은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통적 창작 방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즉, AI 활용 시 근원적 사고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창의적 태도와 예측 불가능성을 수용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시작은 AI가 제시하는 예기치 않은 결과와 혼돈에서 창의적 영감을 발견하는 우리의 태도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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