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획일적인 망분리 정책 개선이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 위기에 놓였다. 정부가 공공 망 보안성을 유지하면서 생성형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실증 예산안이 야당 요구로 3분의 1 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20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망분리 정책 개선 실증(신망보안체계실증확산) 사업 예산 50억원을 포함한 2025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안(정보통신진흥기금 운용계획안)을 의결했다.
당초 정부의 망분리 실증 예산안은 150억원이었나, 세 차례 과방위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를 거치며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은 “국가·공공기관의 망분리 정책 제도개선을 목표로 하는 정보화체계 개선사업으로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전액 삭감을 주장했다. 반면 여당은 “신 망보안체계의 신속한 적용을 위한 실증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원안 유지(150억원)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결국 정부안에서 대폭 삭감된 20억원으로 예산소위를 넘어 전체회의에 올라왔다.
망분리 정책 개선 실증 예산안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소폭 상승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예산소위의 심사 결과에 대해 “AI·클라우드 등 신기술 적용에 앞서 보안 대책을 마련하고 보안 기술력을 높이고 공공데이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 예산”이라며 “최소한 정부의 감액 수용 범위(100억원)까지 반영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민수 의원은 “과기정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 설명자료에도 사업 근거 및 추진 경위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며 “전액 삭감을 주장했으나, 최형두 의원 의견을 반영해 통 크게 150억원 중 50억원을 유지하고 100억원을 삭감하는 데까지 동의하겠다”는 의견을 내면서 50억원으로 결론이 났다.
정보보호산업계는 이번 예산 삭감으로 망분리 개선 정책이 동력을 잃지 않을까 우려했다.
정부의 공공 망분리 정책 개선은 18년 만에 일대 변혁으로 통한다. 정부는 2006년 도입한 획일적인 망분리 정책이 공공데이터 공유와 AI·클라우드 등 신기술 활용이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메스를 집어 들었다. 데이터를 중요도에 따라 보안수준을 차등 적용해 옥죌 건 더 옥죄고 풀어줄 건 풀어 신기술 활용도와 업무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국가정보원은 올해 초부터 관계 부처는 물론 산·학·연 전문가로 꾸려진 '국가 망보안 정책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9월 로드맵을 냈다. 로드맵엔 공공데이터의 외부 AI 융합, 업무환경에서 생성형 AI 활용, 외부 클라우드 활용 업무협업 체계 등 8개 추진 과제를 담았는데, 150억원의 사업 예산을 확보해 추진과제를 실증한다는 계획이었다.
한 사이버보안 기업 대표는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인 제로 트러스트도 정부 실증 사업을 통해 활성화와 시장 안착을 견인했다”면서 “줄어든 예산으론 8개 추진과제를 모두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는 데다 시작부터 제동이 걸려 망정책 개선이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여당도 새로운 망보안 체계 구축이 늦어져 자칫 보안 시스템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의 근거 없는 예산 삭감 갑질로 인해 공공 분야에 AI·클라우드 등 도입을 위한 보안시스템 구축이 늦어지게 돼 정부의 행정효율성 향상에 차질을 빚게 됐다”며 “보안 사고가 나면 민주당이 책임질 건가”라고 날을 세웠다.
한편, 예산안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와 본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조재학 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