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위고비 열풍, 비만약 시장 격변

Photo Image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가 '비만약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효과적인 비만 치료제로 이름을 알리면서 세계 고도 비만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이같은 기대에 부응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가장 급성장하며, 장기적으로 고혈압·당뇨·치매 시장까지 재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남용 우려와 불법 유통, 건강한 삶에 대한 인식 변질 등 산업은 물론 사회적 부작용 우려도 제기된다.

Photo Image
서울 시내 한 약국에 비만치료제 위고비 입고 안내문이 붙어있다.(사진: 연합뉴스)

◇비만약 열풍, 대한민국 강타

지난 15일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일으킨 비만약 열풍은 출시 2주가 지나도록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병·의원마다 재고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환자들 역시 처방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하며 전국을 헤매고 있다.

2021년 6월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위고비는 인슐린 분비 촉진과 식욕 억제에 도움이 되는 호르몬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유사체를 기반으로 한 비만 치료제다. 올해 상반기 기준 글로벌 매출은 210억3600만크로네(약 4조2000억원)에 달하며 전년 동기 대비 74%나 성장했다.

한 내과 의원 관계자는 “출시 2주가량 지났지만 여전히 원하는 만큼 물량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노보노디스크가 위고비 판매에 올인하기 위해 먼저 출시한 삭센다 재고를 우선 해소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도는 등 품귀현상이 지속된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위고비 재고가 부족하면서 노보노디스크가 먼저 출시한 비만약 '삭센다' 수요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2018년 국내 출시한 삭센다는 위고비와 같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다. 둘 다 주사 방식으로 위고비는 주 1회 투약하지만, 삭센다는 매일 투여한다. 효과도 위고비는 68주 기준 체중 14.8% 감량이 확인된 반면 삭센다는 56주 기준 평균 7.5%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삭센다가 투약 편의성과 체중 감량 효과는 적지만 가격이 위고비의 최대 3분의 1 수준인 데다 재고가 넉넉한 편이라 상대적으로 처방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 비대면진료를 통해 삭센다는 처방받은 횟수는 지난 1월 384건에서 지난 9월 3347건으로 무려 8배 이상 늘었다.

한 수도권 병원 관계자는 “최근 비만 치료제 부작용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삭센다는 위고비 대비 체중 감량 효과는 떨어지지만 매일 투여한다는 점에서 부작용 확인과 분석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위고비와 달리 물량 확보가 상대적으로 가능하다는 점도 최근 처방이 늘어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Photo Image
1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위고비 한국 출시 행사장에 위고비 관련 영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내 시장도 '들썩', 시장판도 뒤흔드나

'넥스트 위고비'를 노리는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경쟁도 뜨겁다. 후속주자로 떠오른 곳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다. 한국릴리는 지난해 6월 당뇨병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뒤 올해 7월 같은 약을 비만 치료제로도 허가받았다. 임상 3상 결과 마운자로 15㎎을 72주간 투여했더니 체중이 최대 22.5% 감소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분비 폴리펩타이드)와 GLP-1 이중 효능제인 동시에 위고비의 제한적인 공급량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에선 한미약품이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에페나글레나타이드' 국내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한국인이 서구권과 비교해 체질량 지수가 낮은 것을 감안, 우리나라 환경에 적합한 비만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목표다. 유한양행과 인벤티지랩은 위고비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의 장기 지속형 주사제를 개발 중이며, 동국제약은 1회 투여로 2~3개월간 약효가 유지되는 비만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동아에스티는 미국 자회사 뉴로보 파마슈티컬스가 비만 치료제 'DA-1726'을 개발 중이며, 내년 1분기 글로벌 임상 1상 파트2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다. 다만 국내 제약사의 비만약은 이르면 2028년부터 판매가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글로벌 제약사 제품이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비만 치료제 잠재력은 기존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을 재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막강하다. 특히 위고비 등 GLP-1 적응증 확장성은 비만을 넘어 대사질환, 심뇌혈관 영역까지 포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 자본이 몰리고 있다.

실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위고비 승인 과정에서 심혈관 질환이 있는 비만 성인의 심혈관계 질환 사망·심근경색·뇌졸중 위험을 낮추는 예방 목적을 포함했다. 국내에서도 비만 환자 심혈관계 위험을 줄이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적응증이 추가됐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알츠하이머협회 국제 학술대회(AAIC)에서는 삭센다가 위약 대비 경증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 저하를 최대 18% 늦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여기에 일라이릴리 '젭바운드'는 비만 성인 수면 무호흡증 완화에, 노보노디스크의 당뇨약 '오젬픽'은 담배 등 중독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제약사 관계자는 “GLP-1 적응증으로 당뇨, 고혈압은 물론 치매, 심장질환까지 다양하게 연구된다”면서 “이르면 5년 이후에는 기존 당뇨약, 고혈압약이 비만약 하나로 처방될 수도 있어 시장 재편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