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찬교수의 광고로보는 통신역사]〈20〉IT 소비자 보호 정책, 개입과 자율 간 경계

Photo Image
2017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왼쪽), 이동통신사 요금 비교 사이트 광고.
Photo Image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기업의 수익 독점력은 가격탄력성이 낮거나 시장점유율이 높을수록 증가한다. 이는 가격 변화에 둔감한 이용자가 많을수록, 기업이 가격을 인상하면 수요를 줄인다거나 타사로 옮겨가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올바른 정보에 접할 수 있다면 가격 변화에 민감해지기에 소비자 후생은 증대된다. 사업자가 정보를 왜곡·은폐하지 않도록 감시·규제하는 것이 방송통신 정책의 주요 축인 이유이다. 이론적인 속도를 실제인 양 표기하거나 결합상품 할인 혜택을 뭉뚱그리거나 무료로 홍보하는 것은 금지되며, 위반 시 방통위·공정위로부터 제재받는다.

다양한 서비스가 일상화되면서 소비자 보호 정책은, 날로 중요해지고 있지만, 소비자의 자발적인 선택권이 보장되도록 세심히 설계해야 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특히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명분으로 이용자에 과도한 부담을 안겨서는 안 된다. 2023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웹사이트 가입 후 1년간 접속하지 않으면 휴면·폐기 조처했다. 사용하지 않을 선택도 권리인데도 말이다. 금융에서는 계좌 개설 사유를 입증 못 하면 하루 이체·출금 한도가 제한된다. 내 돈 맡기는 이유를 대라는 것도 우습지만, 급전을 한 번에 찾을 수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웹사이트 해킹이나 대포 통장을 근절하고자 한다면 전담 부처가 조직·범죄를 방지·검거해서 해결할 일이지 잔챙이 몇 막으려고 모든 인터넷·계좌이용자에 불필요한 절차를 강요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과 같다.

정책은 개인 선택권에 과도하게 개입해서도 아니 된다. 현재 정부는 약정 기간 종료 후 가입자에 요금 정보를 제공하는 '최적 요금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가입자의 'Stay or Move'의 선택이 모여 시장 경쟁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정보제공은 중요하지만, 요금 선택권의 주체는 가입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리가 빨라야 먼저 얻는다'라는 첩족선득(捷足先得)은 많은 사람이 정보 수집 시 따르는 보편적 원칙이다. 과거 이용자는 자신의 통화량에 따라 기본료·통화료 요금 페어를 선택했다면 데이터 중심인 지금은 기본료만 고민하면 된다. 소비자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모바일 앱이나 통신사 웹·대리점에서 사용량·요금제를 확인할 수 있고, 정부가 운영하는 '스마트초이스'에서는 통신사 간 요금 비교도 할 수 있다.

결정을 대신에 해주면야 고객은 편하겠지만, 사용 여분을 어느 정도 남겨 최적을 정의한다든지 결합상품, 다회선, 약정 기간과 부가 서비스의 질적 조건을 환산하는 일은 녹록지 않을지 싶다. 차라리 더 많은 사람에 정보를 노출하고 싶다면 비교 사이트를 확산하는 유인책을 고려해 봄 직하다. 영국은 재활용 스타트업, 정보 검색 사이트가 오프콤(정보통신청)이 인증한 요금 비교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적 요금제는 소극적인 정보 취약층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이들은 이미 요금 감면·할인의 사회적 혜택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보호 정책이 균형을 잃는 것은 그 목적이 소비자 권리의 신장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최적 요금제가 요금 인하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적절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