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찬교수의 광고로 보는 통신역사] 〈19〉보이스피싱 찐 경험:대통령이 공들인 박멸 정책, 사후 절차는 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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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과기정통부·방통위의 보이스피싱 대응 방안(왼쪽)과 2023년 방통위·KISA의 불법 스팸 대응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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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가 보이스피싱 정책 방향을 발표한 지 1년쯤 지난 얼마 전, 연로한 친척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일당은 깨진 액정을 교환해야 한다며 SMS 링크를 누르도록 유도 후 원격 제어로 개인정보를 탈취했다. 혈연이 곤란하다는 거짓말에 동조되며 벌어진 일이다. 일당은 우체국 온라인으로 알뜰폰 두 대 개통 후 상거래 사이트에 가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지인 사칭도 시도했다. 밤늦은 시각 112(경찰청)가 연결해 준 은행·카드사를 통해 거래를 중지했다. 최근 어딜 걸어도 잘 안 '보이는 ARS'를 이용해야 하는 만큼 핫라인은 큰 도움이 됐다.

이후는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 고난의 연속이었다. 금융거래 중지로 인증서가 무효화 되어 명의도용방지 사이트에서 대포폰을 중지할 수 없었다. 인증 방식을 다변화하든지 'PASS 확인, 사별 해지' 방법도 병기해야 할 듯하다. 알뜰폰사에 해지하려 하니 '보이스피싱은 내 알 바 아니다'라며 비용을 내라 한다. 알뜰폰 가입 80%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고 대포폰 70%가 알뜰폰이다. 정부가 오프라인 본인 확인 스캐너 도입을 의무화했다지만, 온라인에서 몇 겹으로 거르지 못하면 '대포폰 인큐베이터'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쟁 활성화도 좋지만, 역기능은 제대로 억제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대포폰 확인·탈퇴 사이트에 접속하니 일당은 피해자가 백방으로 원상복구를 위해 뛰는 동안에도 사이트에 가입하고 있었다. 25%의 사이트는 자동 탈퇴했지만, 쿠팡·한게임·피망 등은 일일이 인증, 비번 설정 후 삭제해야 했고 신고란은 보이지도 않았다. 일당의 대포폰과 해킹 메일로 등록된 계좌를 삭제하기 위해 고객센터에는 수도 없이 문의해야 했다. 112 범주를 확대해 긴급 상황에는 당사가 직접 응대하도록 의무화해야 할지 싶다. 최근 거창한 인공지능(AI)이라도 개발할 기세지만, 영문·특수문자 수십개로 구성된, 의도 자명한 계좌는 기존 스팸메일 필터링으로도 충분하다. 선량한 고객 피해를 운운하지만, 문제는 그런 의지도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보이스피싱 사이트는 친절한 요약 설명부터, 동영상, 사전 체험까지 망라하고 있지만, 다급한 피해자가 공무원이 정성스레 정리한 개조식 글을 들여다볼 여유는 없다. '당하면 x(112)에 걸어 은행·카드 정지! y에 대포폰 정지! z에 가입 사이트 탈퇴! #에서 네카오 계정 삭제!'와 같은 요점 팝업만 띄워줘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찰은, 배우 라미란이 주인공인 영화 '시민 덕희'와 같이 수수방관하지 말고, 국내라면 SMS 날리는 번호 변작 중계기 위치를 즉시 파악해 타 범행을 예방하던지 외지 공조 수사를 강화해서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90세에 가까운 노인인지라 20년 넘게 은행 거래는 일반 계좌로 오프라인에서만 해왔지만, 예금은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앱) 제한 기능을 갖추지 못한 금융 기관 P사에서 가상계좌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시대·상식에 뒤처진 이상 징후 포착 시스템을 재정비해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가 금융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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