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는 전 세계적인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달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초연결성이 강화되는 사회이며, 초연결성은 엄청난 개인 데이터의 유통과 집적을 가능하게 한다. 또, 이런 데이터의 수집, 처리 과정에서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연결성, 빅데이터, AI 기술로 집약되는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다. 다만, 디지털 시대는 인간의 존엄한 삶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동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권리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디지털 사회의 권리로서 많이 논의되고 있는 3가지 권리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be disconnected)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 △디지털 유산에 대한 권리(Right to digital heritage)다. 각각의 권리의 내용과 향후 과제에 대해 살펴보자.
◇연결되지 않을 권리
연결되지 않을 권리란 '근무시간 외 직장에서 오는 전자 우편이나 전화,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다. 프랑스는 2017년 1월 1일부터 노동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이에 대한 노사 간 협의 내용을 도출하도록 했다. 글로벌 초연결사회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근로자에게 휴식과 여가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지며 워라밸(work-life balance)도 달성될 수 있다. 다만, 기업으로서는 경영상 필요한 경우에도 근로를 제공받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또 항상 연결되어 있음으로써 업무시간이 늘어날 수 있는 단점이 있다지만 반대로 시간·장소에 관계없이 업무처리가 가능한 편의와 업무처리 시간이 단축되는 등 효율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 스마트워크(Smart Work)다. 이처럼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일과 삶의 균형을 가능하게 하는 권리이지만, 업무의 효율성, 긴급한 경영상 필요 등을 고려해 적정한 수준에서 인정될 필요가 있다.
제22대 국회에서도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관한 입법안을 발의했다. 근로기준법 제62조의2(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를 신설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근로 시간이 아닌 시간에 전화, 전자문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통신수단 등을 이용해 업무에 관한 지시를 하는 등 근로자의 휴식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사업의 특성 또는 급박한 경영상의 사유 등을 고려해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근로 시간 외 업무지시로 인해 근무 장소 외에서 행한 근로는 근로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법안은 과거 법안들과 유사하게 보호범위를 설정하되 정당한 사유를 예외로 두는 점은 유사하지만, 그 예외를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 등 집단자치 규범으로 설정하도록 해 기업의 현실에 맞춰 규범을 갖추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즉, 당연히 근로 시간, 근무 장소 외 일한 시간은 근로 시간으로 간주해 시간 외 수당 또는 보상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 법안과 같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되, 다만 기업의 경영 상황을 고려한 예외의 인정과 이 예외에 대한 보상방식을 취하되 이 예외는 노사 자치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타당한 방향으로 보인다.
◇잊힐 권리
다음은 잊힐 권리다. 잊힐 권리란 '본인이 원할 경우 온라인상의 모든 개인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다. 잊힐 권리를 최초로 규정하고 있는 EU GDPR 제17조(잊힐 권리 및 삭제권 규정)는 정보주체는 개인정보처리자를 상대로 그와 관련된 개인정보의 삭제권 및 개인정보의 확산을 중지시킬 권리를 가지며, 구체적으로 (1)수집되거나 처리되는 목적에 정보가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 경우, (2)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경우로서, 처리에 대한 동의를 철회하거나 동의한 유효 기간이 만료된 경우, (3)정보주체가 개인정보의 처리에 반대하는 경우 (4)정보의 처리 방식이 다른 이유로 인해 본 규정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라는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하도록 하고 있다.
잊힐 권리가 인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초연결사회에서는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가 집적, 공유되면서 소위 '제로 프라이버시 사회'의 위험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을 대비하고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 개인정보자기통제권의 일환으로서 개인정보 삭제 요구권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상 개인정보의 정정·삭제 요구권과 처리정지 요구권도 잊힐 권리와 유사한 권리라고 할 수 있으나 이용자가 회원을 탈퇴한 경우에는 적용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이용자 스스로 과거에 인터넷에 올렸지만 지우기 힘들게 된 흔적을 지울 수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돼 2016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용자는 게시판 관리자에게 접근배제를 요청하거나 검색서비스 사업자에게 검색목록 배제를 요청할 수 있다. 관리자 및 사업자는 이용자가 제출한 입증자료를 고려해 게시물이 이용자 본인의 게시물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접근배제 조치 등을 실시한다. 단 다른 법률 또는 법령에서 위임한 명령 등에 따라 보존 필요성이 있는 경우와 게시물이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서 접근배제 요청이 거부될 수 있다.
한편 2023년 4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아동, 청소년 특성을 고려해 이들이 보다 쉽게 잊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지우개 서비스'를 도입했다. 지우개는 지켜야 할 우리들의 개인정보를 말하는 것으로 아동·청소년 시기에 작성한 게시물 중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게시물을 삭제되도록 하거나 다른 사람이 검색하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30세 미만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19세 미만에 작성한 개인정보가 포함된 게시물인 경우에만 삭제를 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처리는 삭제나 검색 불가, 상담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잊힐 권리를 법제화할 것인지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이미 타인의 게시물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 상의 '임시조치', 본인 작성 게시물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상 '개인정보 삭제 요구권'이 있는 상황이며, 정보주체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외에 공익이나 타인의 권리 간에 균형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유산에 관한 권리
끝으로 디지털 유산에 관한 권리다. 우선 디지털 유산이란 사망한 사람이 남긴 디지털 형태의 모든 자료 또는 사망한 이용자가 인터넷 공간에 남긴 부호, 문자, 음성, 음향, 화상, 동영상 등의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디지털 유산에는 상속재산에 속하는 것과 속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 민법상 상속 규정에 따르면 피상속인이 사망하는 순간 피상속인의 재산상의 모든 권리 의무는 일신전속적인 것이 아닌 이상 상속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상 당연히 상속인에게 이전된다. 일신전속성이란 법률에 따라 특정한 자에게만 귀속되며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통 인격권·가족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결국 디지털 유산이 일신전속권인지에 따라 상속 여부가 결정된다.
포털이나 이메일 계정정보는 일신전속적이기 때문에 승계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하는지가 문제다. 먼저 이런 식별정보는 인격권에 해당하는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승계가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지만, 독일의 판례와 같이 계정 ID 등에 대한 접속권은 망자와 서비스제공업체 간 계약상 권리인 채권으로서 재산에 관한 사항이므로 상속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도 있다. 또 디지털 정보 중 창작성이 있는 경우에는 저작물이 되며, 저작물에 대한 권리인 저작권은 재산권으로서 당연히 상속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 다만, 계정 내에 일상의 생활을 기록한 글과 같이 인격적인 요소가 강한 것이나, 제3자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 이는 상속재산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
한편 디지털 유산의 처리에 있어 피상속인이 가지고 있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고려하면 유언과 같이 생전에 본인의 의사에 의한 처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사이에 서비스 이용계약 체결 시 디지털 유산의 처리에 관한 의사를 설정하고 이후 변경도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취지와 유사하게 2023년 4월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디지털 유산의 승계 여부 및 범위를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자 간 사전에 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따르면 이용자가 사망할 경우, 서비스 제공자는 해당 계정을 휴면으로 설정한 후 이용자가 생전에 정한 방식으로 유산을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약관으로 미리 이용자가 디지털 유산 상속 여부, 상속 대상을 정하는 것이다. 서비스 제공자는 자신들의 서비스 특성에 맞게 별도 보존 기한 등을 설정해 이용자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제 등의 미비로 디지털 유산의 상속 처리가 법원에서 사안별로 해결되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법제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초연결성, 빅데이터, AI 등 디지털화의 진전에 따라 개인에 대한 프라이버시, 휴식권 침해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화의 편익과 함께 이들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법제적 대책이 필요하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dysylee@korea.ac.kr
〈필자〉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과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한국공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데이터·AI법센터 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위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규제심사위원장 및 범정부 마이데이터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 경험과 법률 실무를 기반으로 행정규제, 방송, 통신, 인터넷, 개인정보, 데이터·AI 분야 법과 정책에 정통한 권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