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학술지 네이처(Nature) 유감(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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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前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한국 특집기사가 우리 과학기술계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은 연구개발(R&D)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데, 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낮다(surprisingly low)”는 평가 때문이다. 국내 언론도 이를 인용해 “한국 R&D 투자 대비 성과 부족”이라는 기조로 보도를 이어갔고, 국제적 권위를 가진 학술지에서 발표한 것이라 주목도와 영향력이 컸다. 우리가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데 과학기술 R&D 투자가 크게 기여했음에도, '연구성과 부진'이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상황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네이처는 2014년부터 주로 기초과학 분야의 유수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국가별, 기관별, 분야별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연구성과를 수치화해 '네이처 인덱스'를 발표해 왔다. 우리나라는 국가별 순위에서 지난해 중국, 미국,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 캐나다에 이은 8위로 평가됐고, 올해 4월 기준으로 갱신된 자료에서는 7위로 올라섰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경제성장을 위한 기술개발 투자에 집중해왔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시작한 것은 1990년 '기초과학연구진흥 원년'을 선포하고 선도연구센터(SRC·ERC) 등 대학의 연구기능을 활성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기술개발과 기초연구의 투자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왔으나 아직까지도 기초연구 투자는 차순위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네이처에서도 강조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연구개발비 비중은 전 세계 최상위권(2위)이지만, 연구개발비의 절대 규모는 이보다 낮은 편(6위권)이며, 기초과학연구비 비중도 경쟁 국가 대비 높은 편이 아니다. 선진국에 비해 수백년 뒤늦게 투자가 시작되었음에도 장기간의 지식 축적이 필요한 자연과학 분야에서 다른 선진국들과 어깨를 견주거나 특정 분야에서 앞서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이번 네이처 특집기사의 분석 방식은 한국의 특수성과 기초과학 연구의 본질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또 네이처 인덱스의 분석이 자연과학 분야에만 국한되어 있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기업 투자가 R&D 투자 전체의 약 77%를 차지하며, 미국은 73%, 독일 70%, 영국 65% 수준으로 연구개발비 부담 주체가 나라마다 다르다. 따라서, 네이처의 분석은 기업의 기술혁신 비중이 더 높은 우리 R&D 생태계의 특성과 실제 역량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공학 분야에서 우수한 국제적 성과를 내고 있어 자연과학 분야 논문 수를 바탕으로 하는 네이처의 평가방식으로는 우리 과학기술계가 이룬 연구개발 성과가 저평가된다. 국가R&D 투자를 받아 공부하고 연구한 수많은 사람들이 각 분야와 산업, 특히 반도체 등 세계 1위 한국기업에서 활약하고 있다. 과학기술계가 힘을 합쳐 성장시켜 온 이 모든 과정과 결실을 어떻게 단순히 논문의 수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번 네이처 기사에서 한국 R&D 발전의 잠재적 위험요소로 지적된 부분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공계 인재 확보의 어려움과 여성과학자들의 열악한 연구 환경, 학계와 산업계 간 이동의 경직성, 단기적인 R&D 예산 지원 등 우리가 직면한 난제 해결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우리 과학기술계는 선도형 연구개발 시스템을 향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되 우리만의 강점을 더욱 키워나가야 할 때다. 혁신·도전형 연구, 세계 최초·최고를 지향하는 개방형 연구, 우수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건강한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은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번 네이처의 기사는 유감이나 다시 한번 우리 과학기술계가 더욱 자신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분발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우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前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wil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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