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찬 교수의 광고로보는 통신역사] 〈15〉선시장 후포용 보편적 서비스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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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고속인터넷 보편적 서비스 지정 광고(왼쪽)와 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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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화폐가,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없애주는 매개 기능을 하는 것처럼, 교환기는 집 전화를 연결해 주는 전화망 기능의 핵심이다. 교환원이 배전반 앞에 앉아 일일이 손으로 연결해 주던 시절도 있었지만, 국내 기술로 개발한 전전자 교환기(TDX)가 전국으로 확장되면서 자동화가 이뤄졌다. 집마다 전화선도 부설되면서 개시 80여년 만에 가입 가구는 1000만을 찍었다.

옛 한국통신공사는 망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재원을 활용했다. 가입 시 공탁하는 설비비는, 경쟁사가 없어 해지하지 않는 한 투자를 위한 무이자 장기 차입금 역할을 했다. 자동차 구매 시와 유사하게 전신전화채권을 의무적으로 매입했다. 해외 차관도 도입했다. 집 전화 가입이 증가하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매출액이 투자비를 넘어서자 내부 유보도 늘어났다. '1가구 1전화' 시대를 맞이한 1987년. 외자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채권 매입 제도도 폐지됐으며 설비비는 2000년대 초 경쟁사가 진입하면서 일회성 비용인 가입비로 전환됐다.

2000만 가구를 웃도는 정점에 올랐던 집 전화는 이동통신에 의한 수요 대체로 1000만 수준으로 역주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보편적 서비스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의식주·건강과 같은 요소가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인권의 대상인 것처럼, 국민의 원활한 생활과 제반 산업의 인프라를 지탱한다. KT가 직접 제공하고 타사는 수익력에 따라 비용을 부담(pay or play)하며 요금은 적절한(affordable) 수준으로 규제된다. 공중·선박전화도 마찬가지다.

보편성이란 모든 국민에게 접근권이 보장돼야 하는 평등성, 평균적인 속성과 다르다는 이유로 제한해서는 아니 되는 비차별성 따라서 소외 대상의 포용을 함의한다. 네트워크 측면에서는 지리적인 소외를 끌어안도록 규제한다. 시장에 일임하면 사업자는 흑자가 발생하는 도심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야 자율적으로 네트워크를 깔겠지만, 소외된 도서·산간벽지와 같은 지역에서는 투자가 소홀해져 주민들의 집 전화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에는 초고속인터넷도 보편적 서비스로 지정됐다. 시장 초기부터 제도 도입 논의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삼천리 방방곡곡 수도꼭지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는 의무 부여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전화·케이블망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설비기반경쟁으로 요금은 낮게 설정되었고 후발사의 불리한 여건을 개선해 주기 위해 비대칭 규제도 시행됐다. 인구 저밀 지역에 대한 투자는 2010년 전후의 인수합병 시 사회적 책무의 조건으로 부과되면서 소외 지역에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보편적 서비스를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이용하게 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목표다. 그러나 법적인 근거 없이 공공재라는 명목으로 압박해서 이동통신요금을 인하하기보다는 인내하며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초고속인터넷이 좋은 사례다. 시장 경쟁을 구조적으로 활성화해 적절한 요금 수준을 구현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만일 경쟁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규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며 도입 후에는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는지 점검도 필요할 것이다. 정녕 이로도 해결되지 못하면 소외의 포용이 정부의 최종적인 정책의 초점이 돼야 한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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