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 퀀텀점프, 과학기술 강대국 도약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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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필자가 기관장으로서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아무 고난이나 어려움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이와 유사한 한국 격언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표현도 있다. 실패와 고난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뒤에 오는 성공은 고통이 컸던 만큼 더 값지게 느껴진다.

30여년 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후 북경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죽의 장막'이라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닫혀 있던 나라를 방문하면서 우리나라와 많은 것이 다르다고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깜짝 놀랐던 것은 중국의 경제 상황이 아주 나빴다는 것이다. 국립 연구소를 방문했는데, 한국에서는 대부분 구입해 사용하는 일반 장비들을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겉모습도 조악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지 의심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가장 기본적인 장비조차도 연구비가 부족해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채 20년이 지나기 전에 그들은 유인 우주 정거장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달 탐사선을 보내 흙을 채취해 귀환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그 연구소에서도 이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연구 결과들을 생산하고 있다. 어디서 이런 능력이 나온 것일까?

필자는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직접 장치를 만들어 사용했던 그 경험들이 오늘날과 같은 중국 과학기술 발전의 밑바탕이 됐다고 믿는다. 비록 모조품을 만들었더라도 그런 기술들이 축적되면서 자기 고유 모델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선진국에서 교육받은 우수한 과학기술인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인 '천인 계획'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연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연구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연구 과정에서 생기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과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도 연구의 일환이다. 연구비가 부족했던 중국은 장비를 자체 제작하는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올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공공기관에서 해제되면서 한국 과학기술계는 '자율과 책임'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의 연구개발(R&D) 생태계 활성화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2025년도 주요 R&D 예산을 올해 대비 약 3조원 증액한 24조8000억원 규모로 편성하는 등 과학자들이 신명나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출연연 예산은 올해 1조9000억원에서 2조1000억원으로 증액됐으며 특히, R&D 주요사업비는 올해 대비 약 22% 대폭 확대돼, 지난 R&D 예산 축소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예산은 많을수록 좋겠지만, 과학기술계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방향성 없는 '나눠갖기식 증액'은 사라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올해 정부 R&D 예산 편성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초연구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한편, 인공지능(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 혁신·도전형 기술에도 1조원 이상을 편성해 미래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고 균형감 있는 투자라고 여겨진다.

퀀텀점프란 양자물리학에서 나온 용어이지만, 오늘날에는 제반 조건이 맞을 때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상태로 변하는 것을 일컫는다.

정부가 제공하는 연구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국의 과학기술계가 퀀텀점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해 2030년 과학기술 주요 3대 강대국 달성이라는 원대한 목표도 달성하길 기대한다.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hslee@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