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정신 나간 국민의힘' 발언으로 이틀간 대치를 이어가던 여야가 가까스로 본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해병대원 특검법'이 1번 법안으로 상정되면서 국민의힘은 곧바로 필리버스터(법안 처리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로 맞섰다. 시간끌기에 나선 여당은 필리버스터로 야당이 순차적으로 통과시키려던 '방송4법'을 막고, 야당 무대인 대정부질문도 파행시키는 등 실익을 챙겼다는 분석이다.
국회는 이날 오후 3시 본회의를 열고 '해병대원 특검법'을 상정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법안 상정에 앞서 “지난 1년간 순직 해병의 유가족은 진실규명을 애타게 기다리며 가슴 속에 피멍이 들었다”며 “국회는 국민의 뜻을 따르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때 그 가치가 있다. 이제는 국민 뜻에 따라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국회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법안 상정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순직해병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될 경우 본 법안은 정부로 이송된다”며 “국회는 정부의 행정권한을 존중하고 있다. 그런 만큼 정부에서도 국회의 입법권한을 존중해서 신중한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특검법은 기존 특검법을 보완해 △수사 준비기간(20일) 동안 수사에 즉시 착수 △현직 고위공직자들의 직무 회피 등 이해충돌 방지 △70일로 규정된 특검 기간을 필요시 30일 연장 등의 규정을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강행 처리 시도에 반발하며 22대 국회 첫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당장의 법안처리를 막기위한 여당의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 다만 의석수 과반의 민주당이 24시간 뒤 강제로 토론을 종료시킬 경우 마땅한 저지 수단은 없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조를 나눠 본회의장 앞에서 연좌농성도 함께 진행했다.
필리버스터 1번 주자로 나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여야 합의 헌법적 관행마저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특검의 입법절차를 밟는 것은 공정한 사법 작용을 마비시키는 다수의 폭정”이라며 “민주당의 반헌법적 특검 추진의 폭주가 대한민국을 정쟁과 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 의원을 시작으로 국민의힘에선 나경원·주진우·송석준·곽규택 등 법사위 소속 의원 중심으로 발언에 나섰다. 민주당에서는 박주민·서영교 의원이, 비교섭단체에서는 신장식 조국혁신당·이준석 개혁신당·윤종호 진보당 의원이 찬성 발언을 이어간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킨 뒤 4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야당의 두번째 시도 끝에 특검이 성사될 수 있을지, 아니면 지난 국회때처럼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재표결로 결국 무산되는 절차가 반복될지 주목된다.
다만 야당은 이번 임시 국회에서 해병대원 특검법에 이어 '방송4법' 중 MBC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송문화진흥회법(방문진법) 개정안도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국힘의힘의 필리버스터 추진으로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4일까지 처리가 어렵게 됐다. 여당 입장에서는 필리버스터 추진으로 야당 주도의 방송4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저지할 수 있어 소기의 성과는 달성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한편 당초 이날 실시될 예정이었던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은 무산됐다. 본회의장에서 대기했던 국무위원들은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시작과 함께 모두 퇴장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