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과학은 한 명의 천재만 있으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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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인도협력센터장

흔히 “천재 한 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과학기술 분야에 자주 인용된다. 우리는 천재가 사회를 어떻게 바꿨는지 수많은 사례로 알고 있다.

아이작 뉴턴의 운동법칙은 많은 기계장치 개발에 기초가 됐다. 자동차를 비롯해 로켓, 인공위성과 우주탐사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지구와 우주를 누비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다른 천재인 앨런 튜링은 어떤가.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암호기계 '에니그마'를 해독해 많은 목숨을 살렸다. 튜링의 이론은 컴퓨터와 소프트웨어(SW) 기본 원리를 제공해 데이터 처리, 통신, 인공지능(AI) 등 현대 정보기술 사회 초석을 마련했다.

하지만 천재의 업적을 칭송하다 보면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업적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자·기술자가 협력한다는 점이다. 천재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사용하기까지는 '한 명'만의 노력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생활에 적용하려면 기계와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험하는 단계가 있어야 하고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의 기여가 필요하다.

새로운 발견이 우리 생활에 적용되기까지 크게 세 단계 과정을 거친다. 초기에는 최초 발견자의 결과를 검증하는 연구가 주를 이룬다. 수많은 사람이 연구를 재현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연구 결과가 철회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 고압 상온 초전도체를 발표했던 랑가 디아스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른 연구자들이 해당 연구를 재현하지 못하면서 연구 결과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철회되기에 이르렀다. 과학은 주관적 희망이 아니라 객관적 결과로 발전하기에 연구자는 갓 발견된 연구 결과가 정확하고 타당한지를 엄격하고 철저하게 검증한다.

그 다음은 최초 결과를 여러 방법으로 응용하고 확장하는 연구가 이뤄진다. 휴즈 기술연구소의 시어도어 메이먼은 1960년 팔뚝만 한 크기 '루비 레이저'를 개발했다. 이후 가스 레이저, 고체 레이저, 반도체 레이저 등 다양한 연구를 거쳐 우리가 들고 다니는 작은 레이저 포인터와 치료용 레이저로 진화했다. 이런 발전은 여러 연구자·기술자가 개선한 결과다.

마지막으로 실생활에 적용되는 연구를 수행하는 단계다. 이제부터 엔지니어 역할이 커진다.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에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제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는 시점이다. 이때 다른 분야 연구 결과·지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전엔 작은 결함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이 과정에서 대량생산을 어렵게 만들어 처음부터 다시 연구하거나 심지어 폐기되는 주제도 더러 있다.

단계를 길게 설명한 이유는 연구개발(R&D)이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아무리 혁신적이라도 실생활에 사용되려면 생산비용부터 디자인 등 많은 요인을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각 직군 전문가가 최선을 다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과학 발전에는 천재의 번뜩임도 중요하지만, 그 과실이 우리 손에 떨어지기까지 수많은 과학자·공학자의 셀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포츠와 비교하자면 골프보다 축구에 가깝다. 많은 사람의 노력과 헌신이 맞아떨어졌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은 R&D를 설명하는 데 딱 맞는 문장이다.

오늘도 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이도 동료지만, 전 세계에서 논문 등으로 의견을 나눈 이도, 공장에서 생산라인을 매만지는 이도 동료다. 작은 벽돌이 모여 큰 건물을 이루듯 이들의 협업 덕에 우리는 풍요롭고 편리한 오늘을 누린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천재의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연구자·기술자의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승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인도협력센터장 leesc@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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