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은 홍역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병으로, 2급 감염병으로 분류된다. 요즘은 아이가 태어나면 홍역을 포함해 체계적인 예방접종을 하기 때문에 홍역에 걸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홍역은 위험한 전염병이었다. 특히 치료약이 개발되기 전에는 치사율까지 매우 높았다. 오죽하면 몹시 애를 먹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홍역을 치르다'라는 관용어를 쓸 정도다.
지금 대한민국 의료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한 이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전공의가 이탈하고,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의대 교수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8일 의협은 의대 증원과 전공의 압박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가고, 아산병원 교수들은 내달 4일부터 휴진을 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수술과 입원은 급감했고, 제때 진료받지 못한 환자들은 늘어만 간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1일까지 보건복지부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총 3638건의 상담이 접수됐고, 813건의 피해신고가 있었다. 피해는 수술지연, 진료차질, 진료거부 등이다. 피해는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환자와 환자 가족의 피해 체감도가 더 크다.
이런 상황은 정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의료계 비상 상황 관련 청문회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언제까지 (의료대란 사태가) 완료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100일 넘게까지 넉 달 넘도록 의료 공백이 지속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의료계 양 당사자만으로 해결이 어렵자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움직이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범의료계 위원회인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정부가 대화 의지를 지속 밝히고 있어 조만간 대화가 시작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환자 단체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휴진 계획을 연기하는 병원들도 속속 나온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지금 치르고 있는 홍역은 결국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지금 갈등을 봉합한 뒤에는 다시 이런 홍역을 겪지 않아야 한다. 사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수가를 포함한 필수의료 정책 개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지역의료 강화 등의 정책을 선제적으로 시행하고, 이에 맞춰 의대 정원도 점진적으로 확대했어야 한다. 물론 결과론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다. 이번 정부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들도 문제는 인지했지만, 개선하지 못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칠 때마다 외면하는데 그쳤다. 그렇게 문제를 묵혀둔 결과가 지금의 의료대란이 됐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의료계 문제점을 찾아내고,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또 다시 외면했다가는 제2의 의료대란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한번 홍역에 걸린 후 회복하면 평생 면역을 얻어 다시는 걸리지 않는다. 우리도 이번 의료사태에서 확실한 교훈을 얻고,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 다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권건호 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