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정밀의학 실현을 위한 '성차의학'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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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장

많은 질환이 발생률, 증상, 이환율, 사망률 등에 있어 남녀 차이가 명확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의학에서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고, 진료 현장에서 성차를 다루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뤄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실제로 전문가들도 그렇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거는 물론 첨단의학, 미래 의학을 논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가장 근원적인 차이인 성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많은 의학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대부분의 연구 논문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질환에 있어 구체적인 발병 기전(메커니즘)이나 치료 내용에 있어 남녀 차이를 두지 않고 합쳐서 연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성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에스트로젠이 남녀 생식기, 생식 활동에서의 차이뿐만 아니라 많은 질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규명되고 있다. 또 사회문화적 여성, 즉 젠더 측면에서도 생물학적 특성과 상호작용하며 질환 발생에 영향을 준다는 점도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남녀 성호르몬이나 염색체, 유전자 등에 의한 성과 사회, 문화적 역할에 의해 형성되는 젠더의 차이가 어떤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질환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을 '성차의학'이라 한다.

성차의학이 필요한 이유는 결국 환자치료에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미래 의료의 큰 축으로 꼽히는 정밀의학, 맞춤의학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성차를 고려하지 않아 피해를 본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0년 위장질환 치료제 '시사프라이드'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약을 복용한 캐나다 여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 이 약이 심전도 리듬의 한 부분인 QT 간격이 남성보다 약간 긴 여성에게 치명적인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판매가 중단됐다.

이렇듯 지금까지 의학에서 여성 연구가 되지 않은 것은 현실이다 보니 남녀 차이를 주목하자는 성차의학 담론이 오직 여성만을 연구하는, 여성만을 위한 학문이라는 오해를 받기 쉽다. 그러나 성차의학은 남녀 편향성을 지양하기 때문에 모두의 건강, 보다 정밀한 의학 연구에 도움이 된다.

의료 현장에서 보면 여의사뿐만 아니라 남녀차이에 대한 의구심을 느끼지 못하던 남자 의사도 왜 그럴지 기전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면서 외래 환자를 볼 때 이러한 차이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를 자주 보고 있다. 성차의학 교육의 중요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일례로 여성은 상대적으로 대장 오른쪽에서, 남성은 왼쪽에서 암이 발병하며,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은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을 느끼고, 여성은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각 질환에서 성별 차이에 주목하면 의료진은 더욱 환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있다.

나아가 수많은 질환에서 나타나는 남녀 차이가 어디서 생긴 것인지 그 기원을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질환이 발생하는 근원적인 기전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과 이어질 수 있다.

서구에서는 2010년대부터 이런 남녀 차이에 주목, 미국 스탠퍼드대나 메이요 클리닉, 독일 샤리테 병원 등이 특화 연구소를 설립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는 2015년부터 의학연구에서 성 혹은 젠더를 반드시 고려하게끔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늦다. 2021년 '성별 특성을 반영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틀은 만들어졌지만, 전문가들의 인식과 이해 개선이나 교과과정 반영 등 큰 숙제들이 아직 남아있다. 보다 정밀한 의학, 환자 맞춤 의학을 진정 실현하기 위해 의학계·교육계·국가 등 다양한 주체들이 이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장·소화기내과 교수 00970@snub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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