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애플이 공개한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 광고 '크러시(Crush)'는 며칠 뒤인 11일 더 이상 TV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공식 발표와 함께 그 활용이 종료됐다. 관련해 대중의 반발과 이에 대한 사과까지 이끌어낸 이번 광고는 트럼펫, 피아노, 턴테이블, 흉상, 비디오 게임 컨트롤러 등이 천천히 내려오는 거대한 금속 블록 아래 신나는 리듬에 맞춰 산산이 부서지고 최종적으로 이 모든 게 아이패드로 대체됐음을 드러낸다.
이 1분 길이 광고 속 드러난 메시지는 인간의 독창성과 역사가 아이패드로 압축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디바이스가 문화의 소비와 창조를 위한 진입점이라는 강조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패드의 등장에 힘을 실어주는 위 연출로 인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심화된 인간 창의력의 가능성과 역사의 지속성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을 강하게 자극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애플의 CEO 팀 쿡이 X(전 트위터)에 올린 해당 광고 영상 포스팅에는 1만9000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이 중 많은 댓글들은 이 광고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했다. 트위터 사용자 히다리노 마치는 '인간의 창의적인 도구와 노력을 모두 파괴한 최악의 상업 광고'라 반응했으며, 다른 사용자들 또한 인류 역사 속 아름다운 창작 도구들을 무차별적으로 부수는 상징성을 광고 아이디어로 선택한 애플의 결정에 대해 불편한 반응을 남겼다.
오히려 해당 광고의 구성을 역으로 잡아 크러시가 아닌 블룸(Bloom)으로 잡았다면 어땠을까? 아이패드를 압축했더니 그 안에서 인간 창의성의 다양한 결실이 쏟아져 나와 거대한 압축기마저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개방되는 흐름으로 진행되는 광고 구조였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을까?
두 가지 광고 아이디어 모두 극단적인 메시지, 즉 인간 창의성을 파괴하는 비관적인 기술 또는 인간 창의성을 무한히 발전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기술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술은 이처럼 파괴적이기만 하거나 창조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전동 킥보드 사례가 이 같은 기술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전동 킥보드는 분명 혁신적인 친환경 교통수단이지만, 동시에 기존의 자동차를 기준으로 하는 도로에의 부적응성, 인도 위 방치되는 부작용 등으로 인해 파리 등의 도시에서는 퇴출이 결정되기도 했다. 이는 기술이 가져오는 기회와 동시에 기존의 기준들을 넘어서야 하는 파괴적 기준의 생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적으로 자전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자전거는 초기에 안전성과 사회적 규범에 대한 우려를 낳았으나, 결국 개인의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으며 점진적인 기술 수용이 이뤄졌다.
이처럼 기술은 종종 파괴적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인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변화를 촉진한다. AI 등 신기술 발전으로 인해 향후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8억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며, 창의성 기반 직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 자체는 막을 수 없다. 때문에 인간 고유의 창의성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방안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교육·재교육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코딩,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등 신기술 시대 핵심 역량을 교육과정에 필수로 편입하고, 재취업과 경력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기술혁신과 고용 창출을 연계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기술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R&D 지원 등과 함께 직업훈련·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셋째, 기업은 새로운 기술 활용과 함께 기술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나아가 기술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 홍보 과정에서 사회적 메시지와 영향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 윤리 가이드라인 수립, 기업-정부-시민사회의 지속적 소통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애플 '크러시' 광고 논란은 AI 기술과 현대사회 간 복잡한 긴장관계를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기술 발전과 인간 가치의 조화로운 균형을 모색하는 심도 있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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