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규제 복원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진행한다. 인터넷 자유를 지키겠다는 민주당·콘텐츠 기업의 입장과 망중립성은 기술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이념이라는 공화당·통신사 진영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전 세계 IT 산업계가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제시카 로젠워슬 FCC 위원장은 이달 25일(현지시간) 망중립성 규제 복원 표결을 실시한다고 8일 밝혔다.
망 중립성은 데이터트래픽을 콘텐츠 종류 또는 급행료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한다는 원리다. 로젠워슬 위원장은 인터넷제공서비스(ISP)의 산업분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망중립성 복원을 추진한다. 미국 산업분류상 ISP를 기존 '타이틀1(정보서비스)'에서 '타이틀2(커먼캐리어)'로 전환하는 게 골자다. 통신사가 타이틀2에 속하게 되면 FCC의 강력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 특정 데이터트래픽을 차단 또는 제한하거나, 고품질 급행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민주당과 구글·넷플릭스 등 망중립성 찬성 진영은 인터넷이 자본 논리에 지배받지 않고,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하려면 망중립성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관할권 문제와 관련해 사이버 안보와 정보유출 등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통신사의 타이틀2 편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공화당과 T모바일·버라이즌 등 망중립성 반대 진영은 과도한 규제가 통신사 비용을 증대시키며, 결국 이용자 이익을 침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무엇보다도 기계적인 망중립성 적용이 네트워크 기술 진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이 대표적이다. 통신망을 산업용, 소비자용으로 가상화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통신망을 산업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품질 차이가 필수적이지만, 망중립성 규제 하에서는 통신사가 법령 위반 위험을 떠안은 채 서비스를 운용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미국 통신사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만이라도 예외로 허용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망중립성 찬·반 진영은 FCC에 의견서를 전달하는 등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미국 망중립성 논쟁에 유럽, 한국, 일본 등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진화된 네트워크 기술을 도입해 서비스를 차별화하려는 통신사와 낮은 비용으로 안정적 통신 연결을 보장받고 싶어하는 콘텐츠제공사(CP) 간 갈등은 세계적인 문제로 비화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은 이미 전기통신사업법상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해 서비스안정, 정보보호 등 다양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망중립성은 가이드라인 형태로 급행료를 금지하지만, 네트워크슬라이싱 등은 '특수서비스'로 규정해 서비스를 허용하고 있어 논쟁 발생 여지가 적은 편이다.
한 통신 전문가는 “미국의 망중립성 논의는 통신서비스 관할권에 대한 이슈가 크다”며 “이번에 민주당이 망중립성을 법제화한다고 해도 미국 정권 교체에 따라 또다시 정책이 변화하며 일관성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