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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식 한국전자파학회장(한국항공대학교 교수)

인류 문명을 송두리째 바꾼 위대한 발견은 크게 불의 발견, 수의 발견, 전기의 발견 그리고 근현대에 이르러 전자파의 발견과 양자의 발견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발견은 경험과 실험이 선행되고 그 존재가 나중에 정립이 되는 양상이었으나, 오로지 전자파는 맥스웰이라는 천재 과학자에 의해 이론적 예측이 선행되고 나중에 실험으로 증명된 매우 독특한 발견이었다.

현대 문명 속에서 전자파가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크게 빛을 발하고 있다. 무선 이동통신과 전자레인지, 자율주행 레이다 센서, 전자파 기반 의료기기 그리고 전자기전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전쟁 등 전자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발전의 근본에는 전자파의 효율적 사용이 매우 중요했으며 이를 계기로 전자파의 다양한 활용이 신산업을 창조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이동통신의 지속적 진화로 어느덧 6G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국방 기술의 하나였던 반사된 전자파를 해석해 표적을 탐지하는 레이다를 민간에서 적극 받아들여 자동차 안전과 자율주행을 위한 센서, 재난과 기후 관측을 위한 센서 등에 적용하고 있다.

특히 국방 분야에서 전자파의 사용 또한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현대전은 전자전이 아닌 전자기전으로 방향을 전환했으며 전자파의 전략적 활용이 있어야만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다. 지형이 험한 육지나 해상 또는 공중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형태의 군사 활동에 필요한 전자파는 전자기 스펙트럼의 효율적 활용 등 최고의 전자파 활용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이동통신의 비약적 발전을 씨앗삼아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최선봉에서 지대한 역할을 수행해 온 전자파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민간과 국방 분야의 혈관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전자파는 수요가 증가하면 이용의 제약이 가해지는 유한한 자원이며 효율적 관리와 활용성을 증대시키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해 온 관성적 연구로는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존재론적 물리학의 명구인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전자파 기술의 퀀텀점프를 위해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할 명제다. 보다 멀리 우주로 가고 우리가 모르는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전자파를 기반으로 세상을 넘는 혁신적 연구가 필요하다. 바야흐로 전자파 융합연구에 전력 질주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세상을 넘는 전자파 융합 연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고 원칙 있게 예산을 지원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뀌면 국가 연구개발(R&D) 정책이 느닷없이 바뀌는 경험을 수없이 목도했다. 연구자가 부정을 저지르면 이를 관리하는 체계가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늘 연구자만 싸잡아 비난하는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해마다 국회의원들은 뭐가 그리 궁금한지 연구 진행 관련 자료를 계속 내놓으라고 하고 공무원들은 하릴없이 연구자에게 요청하는 무의미한 일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이 나라의 연구환경은 과거형에 매몰돼 있다.

다른 선진국처럼 포괄적 네커티브 규제로 전환하고 반드시 지킬 사항만 규정해 나머지는 연구자에게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모기업처럼 연구 관리를 위해 부지불식간에 점검을 한 후 부정이 발견되면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퇴출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관리비용도 줄고 연구자의 부정행위도 대폭 줄어들 것이다.

관료는 연구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지 말고 과학기술인을 믿지 않고 통제할 것이 아니라, 정부는 큰 전략을 세우고 통제는 전문가 집단에 의존하는 것이 어떨까. 연구자들을 믿고 오래 기다리는 넉넉한 마음으로 선진화해 다양한 분야에서 세상을 넘는 연구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토대를 바꿔야 할 것이다.

물론 연구자들도 운동선수처럼 최고의 프로리그에서 뛸 수 있는 실력을 쌓고, 나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열어가는 명창처럼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선비처럼 과학기술 연구에 평생 매진할 각오가 있어야 연구의 자율성을 지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고난과 역경을 딛고 전자파와 타 분야의 융합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할 때다.

조춘식 한국전자파학회장(한국항공대학교 교수) cscho@k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