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학과장 “대한민국 미래 먹여 살릴 의사과학자 양성…성적만으로 선발하는 의대 입시제도 개선해야”

2004년 설립, 재학생은 의사면허자·이공계 학석사
의사과학자 200여명 배출…의대신설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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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학과장은 “의사과학자 양성은 국내 의료 바이오산업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가 어떻게 잘사는 나라가 됐습니까. 로슈, 노바티스 등 세계 최대 제약기업과 수백 개 바이오테크 회사를 가지고 있죠. 화이자와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바이오엔텍(BioNTech)의 성장을 보세요. 의료 바이오는 앞으로 반도체 분야 못지않게 국가 경쟁력을 키워낼 수 있는 분야예요. 우리나라 의학계가 환자 치료 역할을 넘어 바이오헬스 산업을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학과장의 말이다. 국내 최고 이공계 특성화 대학 KAIST에 의과학대학원이 있다는 것을 다소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KAIST도 의대 신설을 희망하는 대학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KAIST가 내세운 의대는 기존 대학과 결이 다르다. 환자 치료가 아닌 연구 중심 학문을 표방한다. 그래서 의사가 아닌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김 학과장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의 길을 가지 않고 생화학 전공으로 의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에듀플러스는 그에게서 의사과학자의 필요성부터 의대 쏠림 현상과 정원 증원 등 의학계 주요 이슈까지 두루 이야기를 들었다.

▲KAIST 의과학대학원에 대해 소개해 달라.

-KAIST 의과학대학원은 의사면허 소지자와 이공계 학·석사 졸업자 대상으로 의과학, 생명과학, 의공학 고급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전문대학원이다. 국내 최초로 성공한 의사과학자 교육 커리큘럼을 갖고 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200여명의 의사과학자를 길러냈다. 현재는 7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뛰어난 학생에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면 놀라운 연구성과를 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교육을 받는 학생이 늘어나면 국가 경쟁력에 기여하는 인재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KAIST처럼 이공계대학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KAIST는 기존 의학계 틀 바깥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이스라엘의 대표 공과대학인 테크니온 의대는 이스라엘 바이오산업의 중심이다. 노벨상 수상자만 3명이 나왔다. 의학계 내에서도 미래 의사에게는 공학적 소양이 필수라는 사실은 모두 공감한다. 예를 들면,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는 생명과학뿐 아니라 공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의학 분야에서 공학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현재 국내 의과대학 교육안에서 공학이라는 새로운 학과 과정을 만들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KAIST가 의대 신설에 나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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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과학자를 양성하면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나.

-우리나라 의학계의 진료 수준은 높다. 로봇수술도 잘한다. 하지만 수술에 필요한 로봇은 만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의학계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의학계는 진료 위주로 발전해 왔지만, 앞으로는 연구 개발 쪽으로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의학 산업이 진료 위주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면, 의료 분야의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진다. 의료기기, 신약 등 우리나라 산업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젊은 의사들에게도 의료계가 진료 외에도 새로운 비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의대 신설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의협에서 의대 신설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에 대한 우려다. 의학 교육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고 위험한 부분이 많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 교수진, 탄탄한 커리큘럼을 갖춘 의대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0명 이상의 교수진을 갖춘 의대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KAIST는 이미 의과학대학원 인프라를 갖췄고, 의학 평가 인증 시스템 도입을 통해 교육 부분에 대한 우려를 해결할 준비도 됐다.

▲의사과학자로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세로토닌이 당대사를 조절하는 과정 등 에너지대사 조절에 관한 연구를 15년 이상 해오고 있다. 모유수유를 한 여성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사실도 동물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이처럼 의사과학자는 내가 발견한 새로운 의학적 사실이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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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쏠림 현상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예전에는 의대보다 공대 진학이 더 어려웠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의대를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는 IMF, 금융위기 등 두 차례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의대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했다. 요즘 의대 진학을 위해 엔(N)수생이 많다고 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의대 진학 준비를 하게 되면 본전 생각이 나고, 의사가 되면 다 돈 벌러 갈 수밖에 없다. 의대쏠림 현상의 가장 큰 폐해는 성적 높은 학생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과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지 않기 때문에 필수 의료 분야는 망가지고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의대 진학을 선택한다. 이러한 현상을 막을 방안이 있나.

-의대 입시체계를 바꿔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의대 입시는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수월성에 매달린다. 의사라는 직업 선택을 성적순으로 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의학 교육을 위해 학생 선발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의대는 학부를 졸업한 이후 들어간다. 의대를 지원하고 싶은 학생이 의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지적 수준을 갖췄다면, 그때부터 더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것은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다. 한국 사회는 학생에게 이것을 평가하지 않고 있다. 의대 증원 논의 과정에서 의대 선발 방식 등 의학계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여러 방안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

▲의대 진학을 꿈꾸는 학생에게 조언해 준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지금은 의사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재 어린 학생들이 의대를 졸업할 때 의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일지는 알 수 없다. 경제적인 이유로 의대 진학을 꿈꾸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