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디지털 한류 첨병]〈13회〉문화로 먹고 사는 K컬처 시대의 저작권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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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 원장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23년 글로벌 지식재산 인식지수2023년 상반기 저작권 무역수지 통계

“한국의 창작자들과 그들의 매력적인 이야기는 이제 글로벌 문화 시대정신(Cultural zeitgeist)의 중심에 있다”

K컬처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과 사랑이 뜨겁다. 금년 4월, 넷플릭스 공동 CEO인 테드 서랜도스는 한국 콘텐츠에 25억달러(한화 3조3000억원) 규모의 파격적인 투자계획을 밝혔다. K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을 시대정신에 빗대어 강조했다.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또는 이념을 말한다. 서랜도스 CEO 평가는 수준 높은 한국 K콘텐츠가 세계인의 문화를 이끄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문화로 먹고 사는 시대, K컬처 시대다.

대외 평가뿐 아니라 수출 성적표도 눈부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국내 저작권 무역수지가 15억2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통계 집계 이후 14년 만에 반기 기준 최대치다. 이 중 문화예술저작권은 K콘텐츠 수출 증가에 힘입어 2020년 상반기 이후 지속적인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음악·영상 저작권은 지식재산권 무역수지 항목 중 두 번째로 큰 흑자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지식재산산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2022년 한국 저작권 산업의 경제기여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저작권 산업의 경제기여도는 11.6%로, 미국(12%)보다는 낮지만 중국(7.4%), 호주(6.8%) 등 주요국 대비 높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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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상반기 저작권 무역수지 통계(한국은행, 2023.9)

이처럼 저작권 산업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바로 해외에서 유통되는 우리 콘텐츠의 저작권을 지켜내는 일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불법복제물도 문제지만, 해외에서 유통되는 한류 콘텐츠의 15%가 불법 유통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돌아와야 할 정당한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저작권 보호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 K컬처 시대를 지속하게 하는 해외에서의 저작권 보호

국내 모 콘텐츠 해외 수출기업 관계자는 “우리나라 안에서는 보호원 같은 공공기관이 저작권 침해 대응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대처해야 하니 막막합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 만화 작가는 '해외의 한 팬이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불법 사이트를 여러 명에게 전파해 작가님을 홍보했다며 자랑하던 어이없는 기억'을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침해가 이처럼 심각한 상황이지만 해외에서 이뤄지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대응은 단순하지 않다. 그 나라의 법과 제도, 기술 수준, 저작권에 대한 인식 수준까지 모두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보호원은 해외 불법 사이트들을 모니터링하여 URL 삭제를 요청하는 등 침해 대응을 적극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이들 국가의 정부 및 민간단체와 협력해 저작권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저작권 보호 기술 전수를 통한 상호 협력관계 구축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보호원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을 우선적인 저작권 보호 기술 전수와 ODA 사업, 인식개선 파트너로 삼았다. 보호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제 K콘텐츠 소비가 가장 많다. 한류문화 영향력이 높을 뿐 아니라 저작권 침해 빈도가 가장 높은 곳이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다. 지난 달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발표한 '2023년 글로벌 지식재산 인식조사 보고서'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동유럽 국가가 가장 높고(64%), 아시아·태평양 국가(중국, 인도,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32%)는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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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글로벌 지식재산 인식조사 결과(WIPO)

금년 6월, 태국의 한 콘텐츠 미디어사가 국내 방송사들과 정식으로 프로그램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은 해당 국가 내 저작권 인식개선 시발점이 되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해당 미디어사는 불법 K콘텐츠 유통 서비스를 제공하던 곳이다. 보호원은 이전에는 해외에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콘텐츠를 발견하는 경우 콘텐츠 삭제만을 요구했다. 그러나 삭제가 능사가 아니라는 판단 하에, 정식으로 콘텐츠 서비스 계약을 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보호원이 담당했다. 이처럼 해외에서 정식 K콘텐츠 유통 서비스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창작자들에게 콘텐츠의 제값이 돌아가는 환경이 조성될 뿐 아니라 해당 미디어사가 다른 불법 사이트를 견제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제 공조를 통한 저작권 기술 전수와 보호 인식 공유

보호원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작권 보호 ODA 사업'을 구상 중이다. 우리나라의 선진 저작권 보호 기술과 시스템, 최신 수사기법이 체계적으로 전수된다면 사업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저작권 인식 제고에 기여하고, K콘텐츠가 합법적으로 소비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해당국과 저작권 보호 공동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 창작자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창작자 보호를 통한 K컬처의 시대도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해외 여러 나라가 한국의 저작권 체계와 보호기술에 관심을 보이며 배우기를 희망한다는 점도 국제 공조를 확대하는 데 긍정적인 신호다.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지식재산청장, 경찰청 간부 등 저작권 및 사법 당국의 고위 관계자들이 보호원을 방문하여 저작권 보호기술 개발 경험과 노하우를 배워간 바 있다. 올해 11월에도 태국 중앙지식재산법원 판사와 관계자 수십여 명이 방문할 예정이다.

산업화된 국가들 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76%), 아프리카(70%) 등지에서도 지식재산이 경제성장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조사 결과(WIPO, 2023.9.)도 주목할 만하다. 보호원은 이처럼 콘텐츠 발전과 저작권 보호에 대한 강한 개선 의지를 가진 국가들과 국제 공조를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저작권 해외 사무소의 불법침해 대응 권역을 현재 사무소가 소재한 중국, 베트남, 태국, 필리핀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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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왕립경찰청 연수단의 보호원 방문

저작물은 창작자의 '브레인 차일드(Brain child)'다. 부모가 자녀를 양질의 음식과 교육으로 정성껏 양육하듯, 창작자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지적 재산으로 성장할 때까지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기쁨을 얻고 창작자로서 존엄을 가진다. 저작권 보호는 창작자들의 투자를 정당하게 회수하고, 새로운 창작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기반이다. 지금 우리나라 수출 성적표를 빛내고 있는 K콘텐츠는 창작자들이 일생을 통해 사랑과 헌신으로 키워낸 브레인 차일드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이토록 잘 성장한 K콘텐츠가 '반짝 추억'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창작과 투자, 그리고 적극적인 저작권 보호를 받으며 오랫동안 세계인의 문화적 시대정신을 대표하기를 바란다.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장 jypark@kcopa.or.kr

〈필자〉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장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 미국 듀크대 대학원 정책학 석사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 문체부 해외문화홍보원장, 문체부 국민소통실장, 문체부 대변인, 문체부 미디어정책관 등을 역임했다. 오랜 문화예술 정책 경험에 기반한 한류 콘텐츠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다양한 해외 업무 경험을 활용해 우리 문화예술 콘텐츠의 국제적 저작권 보호에 힘쓰고 있다.

박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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