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한 대로 블랙아웃이 끝났다. 미국 2위 케이블TV 사업자 차터와 디즈니가 협상을 마무리 지으면서 TV에서 사라졌던 디즈니 채널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지금까지 사업자의 협상 결렬로 수많은 블랙아웃이 생겼지만, 이처럼 방송산업을 뒤흔드는 블랙아웃은 없었다는 게 미국 언론과 업계의 중론인 듯 하다. 방송산업 자체가 변곡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변곡점은 수학적 표현으로 그래프에서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점이다. 즉,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하는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산업이 변곡점에 있다는 것은 현재까지 방송산업을 지탱해 온 비즈니스모델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 변화를 관련 모든 사업자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디즈니와 같은 콘텐츠 제공업자와 차터와 같은 콘텐츠 전송사업자의 협상 핵심은 채널 사용료, 지역과 가입자에 대한 채널 커버러지와 신규 채널과 기존 채널 묶음 등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의 핵심이 스트리밍 서비스였다는 것은 협상 결과에서 보듯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급격한 유료방송의 가입자 감소, 소위 '코드커팅'의 원인에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스트리밍 서비스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즈니가 제공하는 Disney+와 ESPN+등과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어떤 형태로 시청자에게 제공하느냐가 블랙아웃 협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OTT제공자인 디즈니와 케이블TV 차터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흔적을 협상 결과에서 볼 수 있다.
협상 결과 중 가장 핵심내용으로 보이는 것은 광고기반의 Disney+ 기본형과 ESPN+를 차터 케이블 가입자에게 도매가로 구독료의 절반에 제공하는 것이다. 약 950만 기본형 패키지 케이블TV 가입자들은 Disney+를, 상위 티어 패키지 가입자들은 ESPN+를 시청하는 것이다.
더불어 1500만이 넘는 인터넷만 가입한 고객을 상대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디즈니 대표 주력 채널 ESPN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추후에 출시하게 되면 차터 가입자에게 제공하기로 한 것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번 협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리니어 채널과 스트리밍을 번들링해 제공되는 소위 하이브리드 패키지를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다.”라고 양 사는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협상의 세부적인 사항을 잘 알 수 없기에 누가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했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하이브리드 패키지는 양 사가 윈윈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차터는 하이브리드 패키지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시청자 요구에 적극 대응하므로 가입자 감소 추세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스트리밍 서비스로 콘텐츠를 강화한 것 뿐 아니라 시청자에게 유연한 채널 패키지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디즈니는 차터 시청자들과 인터넷 가입자들을 상대로 광고기반 Disney+ 가입자 확대할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 가입자 확대를 통해 광고 수입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월가의 많은 전문가들도 협상 결과에 대해 양 사 모두 윈윈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양 사도 “이번 협상은 리니어 채널의 가치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지속되는 인기를 인식하는 동시에 시청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미래를 위한 창조적 모델” 이라고 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변곡점에 선 방송산업의 새 지평을 여는 것이다. 변곡점에 있다는 것은 전진과 후퇴의 기로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협상 결과는 양 사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타 사업자들을 포함 미디어 산업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전과 시청행태의 변화로 인하여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이 깨져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하에서 사업자들끼리 힘을 통한 협상이 아니라 산업의 미래를 보는 안목의 협상을 해야만 한다. 깨진 것을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새롭게 접근해 시청자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홈쇼핑과 유료방송사업자간 송출료 분쟁으로 블랙아웃을 얘기하는 국내 유료방송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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