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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KEIT 원장

“산업기술 연구개발(R&D)의 중심에 있는 우리가 산업기술 R&D 정책과 제도 개선을 뒷받침해 우리나라 경제의 혁신성장을 선도해야 합니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은 지난해 9월 제5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이같이 역설했다. 코로나19 앤데믹은 물론 디지털·그린 전환 가속, 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단절 등 급속한 대변화가 산업계를 덮치면서 새로운 R&D 패러다임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전 원장은 지난 1년간 국내 산업계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국 연구 현장을 돌며 소통하는 데 중점을 뒀다. 탄소중립, 국제협력 등 글로벌 산업 이슈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KEIT의 내부 역량을 다지는 한편 조직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 매진했다. 이 같은 노력은 취임 첫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A등급(우수)을 받는 쾌거로 이어졌다.

KEIT는 21일 지난 2009년부터 약 14년간 사용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명칭을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으로 변경했다. 충실한 과제기획과 연구자 지원 강화를 위해서는 '기획'을 명칭에 넣어야 한다는 요구에 발맞췄다.

전 원장은 앞으로 KEIT에서 경쟁력을 갖춘 최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 역량을 강화하고, R&D 서비스 품질을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 국가 R&D 성과를 높이는 것이 새로운 도전 과제라고 강조했다.

대담=양종석 정치정책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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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KEIT 원장(오른쪽)과 양종석 전자신문 정치정책부 부장

-취임 1주년을 맞이했다. 내부 구성원에게 가장 강조한 가치는 무엇인가.

▲내외부 여러 일정을 바쁘게 소화하다 보니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책변화에 따른 기관 비전과 전략을 이해관계자와 공유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조직 정비, 조직 구성원 동기부여에 매진했다.

연구 현장을 방문해 직접 소통하고 있다. 걸림돌이 되는 R&D 규제를 선제적으로 완화하고, 제도나 정책적인 보완점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는 등 연구자와 정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경제 발전에도 관심이 있다. R&D로 지역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도록 KEIT가 주도적으로 지역 관계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운영한다. 지난해부터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산업기술 유관기관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해 지역 주력산업과 신산업 성장을 위한 아젠다를 논의하고, R&D 수요를 발굴하는 등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기술 패권 경쟁 가속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급변하는 글로벌 이슈에 대해 공공기관의 강도 높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불확실한 여건 속에 미래 기술을 선점하고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산업기술R&D 혁신'이 필요하다.

단순히 산업기술R&D 기획·평가·성과를 관리하는 업무 범위를 뛰어넘어 미래 혁신을 선도하는 R&D 대표 전문기관으로 역할을 다지기 위해서는 KEIT 직원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최고 수준의 R&D기획·평가전문가로 성장해야 할 것을 제시하는 한편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또, 무엇보다 '청렴'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관 명칭 중 '관리'를 대신해 '기획'이 들어가게 됐다

▲R&D 전문기관이 과제기획에 보다 충실하게 임하는 것은 물론 연구자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함께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혁신성장과 산업대전환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시대적인 요구를 담았다.

국회는 지난 5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산업기술혁신 촉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21일부터 바뀐 새로운 기관명에서 보듯이 KEIT는 앞으로 더 전략적이고 미래 산업기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 기능을 강화한다.

R&D 기획은 R&D 성과 창출의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R&D 기획 기능 강화는 당면한 산업 이슈 해결과 미래 첨단기술 선점을 위한 주도적.능동적 기획을 뜻한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반의 기획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초난도·초격차 기술을 지원하고, 성공 모델 분석으로 차기 R&D 기획 정확도를 더 높이겠다.

우수한 기획 결과를 바탕으로 산업기술 R&D 예산을 성공적으로 확보하고, 상용화 혁신을 지원하는 진정한 촉진자 역할을 주도하겠다. 이로써 궁극적으로는 산업기술계의 중추적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기관으로 성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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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KEIT 원장

-최근 우리나라 R&D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R&D 투자 규모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투자 대비 혁신성과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R&D 비효율에 대한 개선 요구도 지속되고 있다.

정부R&D 비효율의 원인은 △요소기술 중심 R&D 투자 △추격형 점진적 R&D 투자 △세계 최고 연구자와 단절된 폐쇄적 R&D 시스템 △온정주의적 R&D 평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와 KEIT는 현재 산업기술R&D 성과 개선을 위한 세부 실행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먼저 초격차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혁신기업 등 민간이 주도하는 '대형·임무지향 R&D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우리나라 산업의 초격차 성장을 견인할 반도체, 이차전지, 미래모빌리티 등 '40대 초격차 프로젝트'를 구체화해 R&D 예산을 우선 투입할 계획이다.

또, 세계 최고·최초 수준의 도전적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국가 전략 차원에서 업종별 톱티어 기관을 중심으로 대·중소·중견기업, 대학, 연구소 등 혁신역량을 결집하여 '글로벌 톱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대형·임무지향 R&D'를 지원할 예정이다.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한 전략적 국제협력 R&D 지원도 확대한다. 기술개발 주기가 짧아지고 개방형 혁신이 중요해지는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해 모든 산업기술R&D 과제를 대상으로 국제공동연구 활성화와 성과 활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R&D 전주기 책임 관리체계를 마련해 혁신 성과 창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소규모. 파편화된 사업은 줄이고 중. 대형 프로그램 사업체계로 개편해, 다양한 R&D 수요를 반영하고 연구기획전문가(PD) 역할을 기존 R&D 기획 위주에서 R&D 전주기 관장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공정성 강화와 성과 창출 중심 평가체계를 도입할 것이다. 특정 카르텔에 흔들리지 않도록 5년간 공동연구 책임자 관계에 대한 제척 신설 등 R&D 과제 선정평가단 구성 시 이해충돌 확인을 강화한다. 기업 주관과제는 선정평가 시 벤처캐피털(VC) 등 시장·산업 전문가 참여를 확대하는 등 선정평가의 공정성과 시장성을 높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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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KEIT 원장

-글로벌 산업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한국에는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중국의 핵심 소재 수출 통제 등 자국 산업 보호 경향이 강해지는 추세다. 산업기술 경쟁력 확보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 간의 연대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통해 자국 중심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막강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제조 2025, 반도체 굴기 등 공급망 내재화를 위해 국가 역량을 집중한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등 일부 첨단기술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반도체 첨단 패키징 기술 등은 선진국 대비 기술 수준이 미흡하다. 이에 따라 KEIT는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첫째, 국내 반도체 산업 체질을 고려한 맞춤형 R&D 사업을 추진한다. 한국이 강점을 보유한 '메모리 분야'의 기술 초격차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범부처 프로세스-인-메모리(PIM) AI 반도체 사업, 차세대 지능형반도체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차세대 반도체 분야 첨단 패키징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대규모 예비타당성조사도 추진 중이다. 고집적·고성능·저전력·다기능 반도체 기술을 확보해 글로벌 선도기업과의 기술 간극을 최소화하고, 국내 산업경쟁력 강화와 세계시장 점유율 향상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겠다.

셋째, 전문인력 양성과 우수 해외기관과의 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데 필수적인 첨단 핵심기술 개발뿐 아니라 전문인력 양성, 우수 해외기관과의 국제협력 등 R&D 이외 지원도 병행한다.

또한 최근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 해외기관과의 공동연구로 국내에 부족한 기술을 보강하고 확장할 예정이다.

-탄소중립도 빼놓을 수 없는 화두다.

▲KEIT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반도체. 디스플레이 4대 다배출 업종의 그린전환을 위한 핵심 감축수단으로 '탄소중립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을 기획했다. 올해 43개 과제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8년간 총 9352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산업 부문의 탄소감축을 위한 첫 대형 사업이다. 우리나라 산업이 해결해야 할 저탄소 산업구조의 핵심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다.

철강의 '수소환원제철', 석유화학의 '전기가열 나프타 분해 공정기술', 시멘트의 '혼합재 증대 기술',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저온난화 가스 개발' 등의 친환경 공정 전환을 위한 핵심기술 개발과 실증을 연계해 지원하고 있다. 일반 R&D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현장 중심형'인 셈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민·관 협력체계인 '탄소중립 협력단'과, 탄소중립 핵심 기술을 업종 전체로 보급·확산하기 위한 개방형·협력형 추진체계인 '탄소중립 그랜드컨소시엄'도 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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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KEIT 원장

-국제 공동 R&D 성과를 소개한다면.

▲국내외 연구자 간 소통·기술 교류의 장인 '글로벌기술전략포럼'을 매년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 개최한다. 해외 협력 수요를 국제공동R&D 과제에 연계하는 등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의 보잉, 반도체 산학연구 컨소시엄(SRC), 사우스웨스트 연구소(SwRI) 등과는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R&D 전주기에 걸친 긴밀한 상시 협력을 이어가며 한미 협력을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베트남, 스웨덴 등 미래 가능성이 높은 국가와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지난 6월 베트남 과학기술부 기술혁신청(SATI), 하노이과학기술대학(HUST), 베트남국립공과대학(VNU-UET)과 한-베트남 첨단산업 기술협력 본격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공적개발원조(ODA) 등 기존과 다른 공동 연구 중심의 협력을 모색한다.

스웨덴과는 전력 반도체, 미래차, 친환경 선박 등 첨단 모빌리티 분야 협력에 힘을 쏟고 있다. 스웨덴국립연구원(RISE)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스웨덴 전력 반도체 기술협력 포럼을 개최했다.

독일 항공우주센터 로봇-메카트로닉스 연구소(DLR)와는 로봇 산업의 기술 협력 강화에 공동으로 대응한다. 다양한 서비스 현장에서 활용되는 협동·재난로봇 분야 이동형 로봇기술 개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산업기술R&D 오픈 메타 플랫폼 'ROME+'가 주목받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방대한 데이터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신속하게 찾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이 ROME+다.

ROME+는 R&D 활동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모아 목적에 맞게 가공·개방한다. 국내외에 공개된 6000만건의 특허를 비롯해 정부R&D 연구과제 정보 등 총 2억건 이상의 R&D 관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망라한다.

올해는 R&D 기획단계에서 주로 행하는 기술수준, 특허동향, 경제성, 비용편익 분석에 ROME+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ROME+의 데이터 분석 엔진은 기획이나 평가 업무를 돕는 것은 물론 키워드 몇 개로 주요국 특허출원 동향, 공동연구 탐색을 위한 기업·연구자 검색, 주요 언론 동향까지 검색할 수 있다. 앞으로 수요자 중심 R&D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데이터 개방과 서비스 고도화를 지속할 것이다.

-취임 첫 해 공공기관 경영평가 A등급을 받았다.

▲2022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며 국정과제 등 많은 정책변화가 있었다. KEIT도 모든 직원이 협심해 기관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정부 국정운영 성과 창출에 이바지하기 위해 첨단산업 발전과 주력산업 고도화 촉진을 중심으로 기관 중장기 전략을 새롭게 마련하는 한편 5대 부문(기능·인력·조직·예산·복지) 효율화 추진, 성과 중심 조직 혁신, 수요자 중심 R&D 관리체계 개선, 디지털전환 가속 등에 힘을 쏟았다. 이 같은 혁신적 노력이 좋은 결실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기술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첨단기술 확보와 기술경쟁력 강화로 기술 선진국과 경쟁하고 글로벌 공급망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KEIT는 국가 경쟁력과 산업 성장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도 직원들과 함께 주어진 임무를 혁신적으로 이행해 '기술주도 혁신성장, 기술기반 산업강국의 촉진자'라는 비전을 실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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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KEIT 원장

○…전윤종 원장은


전북 군산 출신이다. 지난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리즈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제36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부 정책기획팀장, 통상정책총괄과장, 정책기획관, 통상협력국장,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통상교섭실장 등 다양한 산업·통상 분야 보직을 경험했다. 2022년 9월 제5대 KEIT 원장에 취임한 이후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윤희석 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