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성장 정체의 늪에서 파괴적 혁신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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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져 가는 경고음이 들린다. 지난해 4분기 우리경제가 역성장한데 이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3% 증가하는데 그쳤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 경제성장율 전망치를 1.4%로 낮췄다. 막대한 가계부채로 소비가 약화되고, 중국시장의 부진으로 수출이 위축되면서 회복이 늦어지고 있다. 게다가 저출산에 따른 경제인구 감소가 성장동력을 잠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은 자본량, 노동량 및 생산성의 3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60년 이후,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수출시장을 개척하며 투자를 확대해 고도성장을 일궈냈다. 성장률 측면에서 노동량 증대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저출산이 고착화되면서 암울한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노동, 투자라는 양적요소의 투입에서 벗어나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이며 성장의 신바람을 되살려야 한다.

혁신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보았다. 기술혁신을 통해 새 상품이 등장하고 신 시장이 창출되면, 기존 제품은 대체되고 구 시장은 도태되는 ‘창조적 파괴’가 경제의 역동성과 성장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혁신론의 계보를 이어가는 미국 하버드대 크리스텐슨 교수는 기업경영 관점에서 ‘존속적 혁신(sustainable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구분했다. 전자는 현존 기술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연속론적인 방식이고, 후자는 기존 기술을 와해시키고 신기술을 도입하는 분절론적 혁신을 말한다. 자연계의 진화가 실제로는 승계적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단절적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현실의 기술혁신도 존속적이면서 파괴적인 양면의 특성을 갖게 된다. 휴대전화에서 진화한 스마트폰은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디지털카메라, MP3, 알람시계 등을 대체한 경우도 이러한 이유다. 지금은 존속적이냐 파괴적이냐를 가리는 것보다 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에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 수 있는 ‘혁신’이 더욱 긴요한 상황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술혁신을 통한 초격차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 초격차는 기술우위를 파격적으로 확대하고, 미래 성장 시장을 선점하며, 새 비즈니스를 개척해야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산업대전환 초격차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미래모빌리티, 핵심소재, 첨단제조, 지능형로봇, 항공·방산, 첨단바이오, 차세대원자력, 에너지신산업 등 11개 산업 분야에서 40대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혁신성장’이라는 철학을 담아, 전문성과 혁신역량을 갖춘 민간이 전폭적으로 참여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갖도록 연구 수행체계를 개선한다. 가치사슬로 연결된 대기업과 1, 2차 협력기업이 공동으로 기술개발을 하는 경우에는 수요 대기업의 참여와 권한을 보장하는 방식이 도입된다.

‘초격차 프로젝트’가 산업기술 분석을 바탕으로 차질 없는 성공을 추구하는 ‘존속적 모델’이라면, 불가능에 도전하며 실패를 용인하는 ‘파괴적 모델’로 시행 3년째에 들어선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사업을 들 수 있다. 3단계로 진행하며, 단계마다 약 30%만 중간 평가를 통과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오디션형 경쟁방식’과 ‘그랜드챌린지위원회’라는 과제 기획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전문가가 참여해 미래 사회를 예측하고, 미래 산업의 판도를 바꿀 도전적인 기술개발 과제를 제시한다. 당연하게 과제 내용이 매우 파격적이다. 가령, ‘아티피셜 에코푸드’ 과제는 배양육 개발을 통해 대체 식품 시장을 선도하며 세포농업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한다. 인간의 건강수명을 연장하고 노인성 질환을 예방하여, 생명공학 산업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노화역전’ 과제도 있다.

이와 함께 기존 기술 로드맵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과 방식에서 도전적 기술을 기획하는 국내 최초의 개념 설계형 ‘파괴적 혁신R&D 설계기획’ 사업이 올해 출범했다. 제품·서비스의 개념설계, 기능 정의, 타당성 검증을 수행하는 기획 연구 사업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기술개발 가능성을 검증한다. ‘인공 아가미’(산소통 장비 없이 수중에서 자유롭게 호흡이 가능한 장치), ‘인공지능 가변초점 안경’(AI 적용 착용자의 시력 상태를 분석하고 렌즈의 굴절을 자동 조절) 등 8개의 파괴적 혁신R&D 과제가 올해 선정되어 기획 연구를 시작한다. 기획 과제가 혁신적이고 시장 창출 가능성이 우수한 경우에만 후속 상세기획 및 기술개발로 연계하는 경쟁형·포상형 R&D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애플의 창업자인 잡스는 생전에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고 역설했고, 국내 시가총액 1위 삼성의 이건희 선대 회장은 “가족만 빼고 모두 바꾸라”고 강조했다. ‘산업대전환 초격차 프로젝트’,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및 ‘파괴적 혁신R&D 설계기획’ 사업과 같이, 좀 더 차별화되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기술개발 정책이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성장 정체의 돌파구가 되길 기대한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 art@keit.re.kr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은 정책·경제·통상 분야에 두루 능통한 관료 출신 기관장이다. 군산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36회에 합격, 199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통상협력국장·통상교섭실장 등으로 활동했다. 주유럽연합(EU)·벨기에 대사관 상무관, KOTRA 교역지원센터장,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 연구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지난해 9월부터 R&D 기관 KEIT에서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취임사에서 KEIT를 ‘혁신성장 촉진자’ ‘산업 대전환 견인차’로 거듭나도록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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