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선스반납에 합병철회까지…벤처투자산업 성장 가로막는 ‘칸막이’ 촉진법.

벤처투자업계 성장동력 확보 시도가 불명확한 제도로 인해 번번히 제동이 걸리고 있다. 앞서 겸업 벤처캐피털(VC)의 액셀러레이터 등록을 자진 반납한데 이어 이번에는 우회상장을 시도하던 VC의 합병 철회가 이어진다. 벤처투자산업 육성을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업계 성장을 가로막는 ‘칸막이’ 규제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캡스톤파트너스는 엔에이치기업인수목적25호와 합병을 철회한다고 17일 공시했다. 지난 15일 HB인베스트먼트가 엔에이치기업인수목적23호와 합병을 철회한 데 이은 두 번째 사례다.

최근 벤처투자시장 침체로 공모시장이 덩달아 꺼지면서 직상장이 아닌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합병으로 안정적인 자기자본 출자금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지난해 한국거래소가 합병 이후 기존 법인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스팩이 소멸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하면서 VC도 스팩합병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기존 법인 소멸에 따른 등기변경과 신규 등록 등의 문제가 해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스팩합병 발목을 잡은 것은 VC 소관 법령인 벤처투자촉진법이었다. 이 법에서는 인수·합병 목적이 아닌 경우 VC가 다른 VC 지분을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HB인베스트먼트와 캡스톤파트너스가 합병하려던 스팩에는 SBI인베스트먼트, 우리벤처파트너스가 각각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캡스톤파트너스 관계자는 “벤처투자법에 타 VC 지분 인수를 제한하는 항목이 있다는 점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은 실수”라면서 “대부분 스팩에 VC가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스팩합병 방식 대신) 향후 직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HB인베스트먼트 관계자도 “코스닥 상장을 결정하고 증권사와 합병 대상 스팩 선정까지 모두 마무리 지은 후에야 해당 요건을 확인했다”면서 “정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하더라도 이른 시일 내에 개정이 쉽지 않은 만큼 합병을 철회하고 직상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벤처투자법 제정 당시부터 지나치게 많은 행위 제한 요건을 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VC의 스팩합병 철회 뿐만 아니라 앞서 겸영 VC의 액셀러레이터 등록 반납까지 벤처투자법이 여타 금융위 소관 법령과 다른 요건을 적용하면서 필연적으로 예견됐던 일이란 지적이다.

실제 다른 VC의 지분 인수를 제한하고 있는 벤처투자법과 달리 신기술금융사는 여신금융업법에 따라 이런 행위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자본시장법으로 규정된 사모펀드 역시 소관 법령에 따라 다른 규제를 받는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뿐만 아니라 신기술금융사 등 금융위 소관 VC와 중기부 소관 창투사가 다른 법으로 행위 제한 요건을 정하다 보니 업계 혼선이 발생한지 오래됐다”면서 “이처럼 서로 다른 규제 체계가 이어져서는 스팩합병 철회는 물론이고 투자 제한 등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계속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벤처투자법 소관 부처인 중기부는 합병 철회 이후에야 해당 문제점을 파악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협회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해 제도 개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Photo Image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