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새로운 한일 협력, 슬기로운 중소기업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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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2010년 여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글쓴이는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서 연구자로 근무했다. 당시 원장님의 긴급 호출이 있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를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를 해결하자는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하셨다. 중소기업에 답이 있으니 100만개 중소기업 실태조사를 해서라도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아보자고 하셨다. 아울러 연구비는 걱정하지 말고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본격적인 연구에 앞서 원인을 찾아봤다. 국교 정상화 당시 한국은 1차 경제개발 계획이 한창이었다. 한편,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했다. 그즈음 근대화 100년을 맞아 산업의 대전환기에 있었다. 일본은 근대화 초기의 생산설비를 처리해야 했고, 한국은 산업화 초기에 생산설비가 필요했다.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일본은 일제 강점기에 대한 배상금으로 3억 달러의 현물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현물은 생산설비가 중심이었고, 양국은 이를 통해 서로의 문제를 절묘하게 해결했다.

결국 현물이 무역역조(貿易逆調)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번, 그것도 처음에 장착된 일본의 생산설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설비에 맞는 원재료도 일본에서 사와야 했고, 부품도 사 와야 했다. 우리는 이걸 두고 한국과 일본의 분업 구조라 하고, 산업연관이 크다고 표현한다.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한국의 수출이 증가하면,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증가하는 구조다. 결국, 한국경제가 성장할수록 한국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커지게 마련이다. 물론 수입을 대체하는 국산화를 추진할 수 있지만, 경제효용을 고려할 때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원장님께 문제 해결보다 양국의 협력이 더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원장님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셨고, 고민 끝에 연구 중단을 결정했다.

한국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2022년 한국은 478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그해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241억달러였다.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얼마나 뼈아픈 현실인지 알 수 있다. 최근 일본은 지난 4년동안 실행했던 대한국 수출규제를 해제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로 한국의 대일본 수입은 감소해야 한다. 그러나 수출규제에도 한국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줄지 않았고, 오히려 늘었다.

지금 한일 관계는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를 걱정하는 분들은 새로운 한일 관계가 무역수지 적자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전히 양국의 관계를 경쟁 관계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양국의 산업 및 무역 구조를 일순간에 바꿀 수는 없다.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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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다. 한국의 대세계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 수준이다. 주요 국가별로 살펴보면, 미국은 15.6%, EU는 19.4%, 중국은 14.1%다. 한국 전체 기업체의 99%가 중소기업임을 고려할 때 수출 비중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일본은 예외다. 한국의 대일본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5.6%다.

이처럼 중소기업이 일본 시장에서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실마리는 대기업이 일본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를 봐야 한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그러나 유독 일본 시장에서 대기업 비중은 64.4%에 불과하다. 일본 시장은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거래가 이뤄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는 의미다. 대기업의 월급쟁이 전문경영인은 이러한 시간을 버티기 어렵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오너경영'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일단 중소기업의 대일본 수출을 확대하면서 대일본 무역역조 해결의 첨병으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중소기업 참여를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중소기업은 장단점이 교차하는 게 많아 협력의 대상 또한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스타트업이다. 일본 인구는 1억 2000만명인데 중소기업 숫자는 360만개다. 한국 인구는 5155만 명인데 중소기업 숫자는 729만개다. 한국 중소기업 숫자가 과도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만큼 스타트업이 역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일본에서 스타트업은 부진한 편이다. 2022년 기시다 총리는 향후 5년간 스타트업을 10배로 늘리려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스타트업청을 설립했다. 벤처펀드는 역대급 수준으로 확보한 상태다. 반면, 한국은 모태펀드 규모가 줄면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한국의 역동적인 스타트업과 일본의 적극적인 정책지원을 매칭하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 협력 대상은 장수기업 경쟁력을 교류하는 것이다. 한국 중소기업은 역동적인 만큼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많다. 729만개 전체 기업체 중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체가 7개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대기업이다. 중소기업은 아예 없다.

반면, 일본은 2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중소기업이 3300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중소기업은 5만여개로 추산된다. 1000년의 역사가 깃든 중소기업도 있다. 그들이 그렇게 생존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경쟁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 자그마한 식당의 조리법부터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까지 교류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보호무역이 팽배해졌다. 한국은 난처하기 그지없다. 미국을 좇으면 중국이 위협을 가하고, 중국을 좇으면 미국이 날을 세운다. 일본과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지만, 역사가 발목을 잡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글로벌화를 거부하고 미국처럼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만들기도 어렵다. '작은 개방경제'인 한국의 태생적 한계다.

정책도 영리한 전략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전략이 엉성하면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곤 한다. 이제 국민도 영리한 전략을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좌고우면하기에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 '복잡다단'한 한국과 일본이 중소기업 협력을 통해 열 새로운 시대는 한국경제 위기 탈출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필자>

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은 충북 청주 출생으로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경제학사, 한국외대 중국경제학 석사와 성균관대 국제경제학 박사를 졸업했다. 이후 2004년부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팀·중국팀 전문연구원, 2006년 중소기업연구원(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국제경제실 연구위원으로 재직했다. 이후 2014년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2021년 취임 제8대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경제학 기반의 중소기업 정책연구를 선도하고 중소기업과 정부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책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ohdy@kos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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