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118〉Disease-X에 대비할 때다

Photo Image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교수·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

지난 3년 동안 우리를 어렵고 힘들게 한 코로나19는 이제는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유행의 기복은 있을 것이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다가오는 겨울철에는 사회에 다소 긴장감을 주는 형태의 유행은 불가피할 것이고, 특히 고위험군 중심으로 중환자와 사망자가 다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방역 당국은 백신과 치료제를 충분히 갖추고 고위험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지금부터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이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까다로운 방역정책에 잘 따라 주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민관을 막론하고 방역 현장에서 고생한 인력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는 미래 감염병인 Disease-X에 대한 대비를 철두철미하게 해서 국민의 희생과 협조에 보답해야 한다. Disease-X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질병의 이름을 X라고 표시한 것이다. 필자가 질병관리본부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G20 보건장관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특정 국가에 Disease-X가 발생한 것을 전제로 보건장관들이 어떤 조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도상연습을 하는 자리였다. 하루종일 진행된 회의에서 각국의 보건장관 또는 방역책임자들이 의견을 개진했다. 이후 불과 3년이 지나지 않아 인류 역사에 없던 코로나19 대유행을 맞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거론된 어떤 방법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우리 인류가 미지의 감염병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증빙하는 것이다.

필자의 예상으로는 다음 팬데믹도 호흡기바이러스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짙어서 코로나19의 경험이 큰 자산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더욱 철두철미한 대비로 한 명이라도 희생을 줄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우선 다음에 유행할 감염병 후보들을 찾아야 한다. 철저한 국내외 감시와 전문가 예상에 근거해 예상 감염병 명단을 작성해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니 대상을 잘 고르지 못하면 그만큼 승률은 낮아진다. 지난해 필자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 미국 질병통제센터장을 지낸 인사와 영상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조류인플루엔자(AI)가 다음 팬데믹으로 될 가능성이 짙다는 견해를 보였다. 필자도 언젠가는 AI가 우리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현 상태의 AI는 치료제가 있어 그리 두려운 존재가 아니나,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결합해 새로운 종류의 유전자를 가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라싸열, 헨니파뇌염, 웨스트나일뇌염 등 후보 질환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기하고 있다.

일단 후보 감염병이 선정되면 백신과 치료제가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백신 주권을 말로만 외친지 오래지만 코로나19 유행에도 우리 백신은 후발주자로서의 설움을 맛보았고, 그나마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

국립보건연구원 산하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도 쉬운 사업만 하려 하지 말고 모험적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언제까지 국내산업 보호정책에 기댈 수는 없지 않은가. 백신은 그나마 치료제보다는 한발 앞서 있으니 다음 팬데믹에는 우리의 백신이 한몫할 것으로 기대한다.

Disease-X의 초기에는 방역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학조사, 진단검사, 격리, 치료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지난번과 같은 혼란이 있으면 안 된다. 병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수천명의 환자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감염병전문병원의 조기 운영을 서두르고, 중환자 병상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평상시에도 부족함이 있는 응급의료체계를 공고히 하는데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지난 3년 동안의 방역과 의료 관련 자료가 산재, 이를 통합하고 분석해서 다음에 대비해야 한다. 역학조사를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실시간 공유나 분석은 아직도 불가능하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을 자처하고 전 국민의 건강지표가 전산화되어 있는 우리나라가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Diseae-X에 대비한 방역정보 통합관리시스템을 서둘러 가동해야 한다. 방역 관련 자료는 모든 방역 관련 주체가 실시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분석·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부디 다음 팬데믹에는 코로나19의 교훈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교수·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 pulmoks@hallym.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