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신사업 아이디어 뺏긴 스타트업 "형사처벌 규정 없어 손놓고 당해"

대기업에 사업 아이디어를 탈취당한 스타트업이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기 위한 제도 정비를 요구했다. 아이디어 침해와 데이터 부정 사용 등에 대한 명확한 형사처벌 근거를 마련하고 행정조사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단법인 경청은 1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최근 대기업과 아이디어 탈취 분쟁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 5개사와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는 알고케어, 프링커코리아, 키우소, 닥터다이어리, 팍스모네 등 5개사가 참여했다.

이날 모인 스타트업은 모두 시제품 또는 초기 서비스 출시 안팎으로 대기업과 투자 또는 협력 미팅 이후 대기업에 아이디어를 탈취당했다고 주장한다.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 프링커코리아는 LG생활건강, 키우소는 농협경제지주, 닥터다이어리는 카카오헬스케어, 팍스모네는 신한카드와 아이디어 탈취를 두고 분쟁 중이다.

재단법인 경청과 이날 모인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아이디어 탈취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는 제도 정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현행 부정경쟁방지법 상에는 아이디어나 성과물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없다. 행정조사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각 정부 부처가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분쟁을 해결하고 있어 스타트업이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박희경 경청 변호사는 “형법상 자동차를 불법으로 사용하거나 편의시설을 부정 사용하는 경우에도 3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데 유독 무형물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면서 “아이디어 침해에 대한 명확한 재산적 가치 평가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날 스타트업이 주장한 아이디어 탈취 사례는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알고케어나 프링커코리아와 같이 CES 등 세계 유수 전시회에서 이름을 알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투자 또는 협업미팅을 계기로 제품설명과 사업정보를 요구한다. 키우소처럼 공모전에 아이디어를 출품한 사례도 있다. 이후에는 세부 작동방식을 달리한 유사 제품·서비스를 내놓은 뒤 별도 특허 출원을 내곤 한다.

이렇게 불거진 스타트업의 아이디어 탈취 문제제기에 대기업은 흔히 업무방해나 명예훼손 등 기술 탈취 여부와 무관한 형사고발을 제기해 스타트업을 압박한다. 실제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는 LG생활건강에 아이디어 탈취 문제를 제기하자 역으로 개인정보유출,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먼저 형사고발을 당했다.

윤 대표는 “현재로서는 실효성 없는 공정거래법에 기대 고발한다고 하더라도 스타트업에게 과연 어떤 실익을 얻는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면서 “스타트업이 왜 잘 나가는 회사를 걸고 넘어지느냐며 잘못되면 역으로 공격당할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방성보 키우소 대표 역시 “현재로서는 스타트업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고소밖에 없지만 실효성이 없다”면서 “하루빨리 스타트업이 대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Photo Image
대기업으로부터 아이디어 탈취 피해를 당한 스타트업이 1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분쟁 사례를 말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희경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 장태관 경청 이사장,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 방성보 키우소 대표, 송제윤 닥터다이어리 대표, 홍성남 팍스모네 대표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