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빠져나가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이 연구기관에 분별없이 적용돼 생긴 어려움입니다. 개선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 과학기술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회장 송철화)가 5일 공공과학기술혁신협의회와 함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과기 강국 실현을 위한 공공부문 연구개발(R&D) 체계 혁신' 정책토론회에서는 현 출연연이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컸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했다. 법제적인 노력으로 상황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연이어 제기됐다.
발표를 맡은 이석훈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 명예회장은 “2010년대 초반만해도 연간 50명 정도이던 이직자들이 2020년대 들어 200명으로 불었다”며 “그중 대부분이 젊은 연구자”라고 밝혔다. 인력을 유치하기는커녕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대기업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 만 61세인 정년과 임금피크제 등 다양한 처우 문제를 언급했는데 공운법, 공공기관 굴레에 처한 출연연 상황이 그 근간이라고 피력했다.
공운법에 따른 총액 인건비 및 정부 인상률 적용, 연구 현장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 정책들이 출연연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2019년, 출연연 등이 공공기관 내에 '연구개발목적기관'으로 지정됐지만, 이후 시행령이 만들어지지 않아 효과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 명예회장은 그러면서 “지난 1월 4대 과학기술원이 과기 인재양성과 자율적 연구환경 보장을 근거로 공공기관에서 지정 해제됐는데, 이 근거는 출연연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이것이 어렵다면 연구개발목적기관 별도지침 제정을 위한 공운법 개정, 공운법 시행령 개정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각계각층 인사들이 이런 해법에 공감했다. 특히 법제 변화가 확실한 방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과거 출연연의 연구개발목적목적기관 지정에 크게 기여한 신용현 전 국회의원은 “연구기관 자율성 확보, 경쟁력 향상을 이루려면 구체적인 법률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소속 권성훈 박사는 “장기적으로는 공운법에 상응하는 별도 법을 근간으로 연구개발목적기관 관리 체계를 만들면 어떨까 한다”며 “과거 출연연 육성법 역할을 한 '특정 연구개발법'의 범위를 넓히고, 단계적으로 공운법 하위 시행령에서 이를 준용토록 하는 체계를 만들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공공기관 관련 논의를 넘어서 애초에 출연연을 충분히 지원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상선 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출연연법 개정, 혹은 특별법 제정으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자율을 보장하되 성과에 책임을 지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한 여야 의원들도 공감, 협력의 뜻을 밝혔다. 과기정책연구회 공동 이사장이기도 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과기 기본법, 공운법 개정 필요성 등 규제개선 목소리를 높여왔다”며 “출연연 공공기관 해제, 혹은 시행령 제정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공동이사장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공운법,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평가제도 등 부분이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뒤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오늘 논의 내용을 두고 여야,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 출연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