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피해액 59조원 '테라루나 사태' 핵심 권도형, 국내 송환 오리무중

테라 프로젝트 몰락 1년
국내 피해자만 20만명 추산
몬테네그로 현지법 위반 권 대표
美서 재판 끝나야 韓 송환 전망도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달 유럽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을 사용하다 검거되면서 국내 송환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권 대표가 주도한 테라루나 프로젝트 붕괴 피해액이 전 세계적으로 약 450억달러(약 59조원)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국내에만 피해자가 약 20만명 이상으로 집중된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현재 권 대표는 몬테네그로에서 공문서위조와 불법입국으로 체포됐다. 몬테네그로 현지 법 위반문제를 다룬 이후 국가 간 범죄인 인도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 실질적인 국내 송환 시점은 누구도 확신하기 어려워졌다.

테라루나 프로젝트 피해가 글로벌 규모로 발생한 만큼 미국에서도 권 대표를 기소한 상황이다. 미국 뉴욕 검찰은 권 대표에게 증권사기,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금융사기와 시세조작 등 8개 혐의를 적용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보다 한 발 앞서 권 대표의 범죄인 인도를 신청했는데, 이로 인해 권 대표의 한국 송환은 미국에서의 재판과 형기가 끝난 뒤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국내 송환 시점을 미국보다 앞당길 수 있도록 권 대표를 비롯한 용의자들이 모두 한국 국적이라는 점을 적극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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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투합했던 권도형·신현성…문제 터지자 '손절'

권도형 대표가 검거되면서 테라루나 프로젝트의 또 다른 한 축 신현성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의 향방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검찰은 신 대표 역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주요 공범이 체포돼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테라 프로젝트는 권도형과 신현성 티몬(티켓몬스터) 창업자가 의기투합해 2018년 테라폼랩스를 창업하면서 본격 출발했다.

e커머스 운영 경험이 있는 신현성 대표는 온라인 쇼핑몰 결제 과정에서 신용카드사나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했다. 티몬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블록체인에 관심이 많던 권도형 대표를 만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을 고안하게 된다.

권도형 대표은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반면에 신현성 대표는 티몬 창업으로 인해 당시 스타트업 업계에서 탄탄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는 우아한형제들·야놀자와 해외 큐텐(Qoo10)·캐러샐·티키 등 다양한 플랫폼 기업을 얼라이언스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테라 프로젝트의 메인넷이 공개된 이후에도 블록체인 기반 결제가 본격 도입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국내 가상자산관련 법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위법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신 차이코퍼레이션이 제공하는 간편결제서비스에 포인트(선불전자지급수단)를 연동하는 '테라X'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시도를 이어갔다.

이후로도 신현성 대표는 강연이나 세미나, 유튜브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수차례 테라를 홍보해 왔으나, 2022년 5월 테라루나 프로젝트 사태가 발발한 직후부터는 관계를 전면 부인해 왔다. 사태 발생 직전까지 테라루나를 홍보한 것이 드러나 구설에 오르자 해당 유튜브 영상을 삭제 처리하기도 했다. 차이코퍼레이션 역시 테라 사태가 본격화되자 공식 입장문을 통해 “2020년부터 테라 측과 파트너십을 종결했다”며 선을 그었다.

◇테라 프로젝트의 몰락…'연 20% 수익률' 앵커 프로토콜

탄탄해 보였던 테라 프로젝트가 본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22년 5월 '디페깅' 사태가 벌어지면서다. 디페깅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달러 등 실물화폐에 걸려있던 페깅(고정)이 풀리면서 가격이 변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페깅 알고리즘이 무너진 배경으로 앵커 프로토콜의 신뢰도 문제를 지적하는 시각이 많다. 테라에는 UST(테라 스테이블코인) 예금을 통해 수익을 제공하는 디파이 '앵커 프로토콜'이 존재했는데, 이 시스템의 수익률이 너무 높아 '폰지사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커졌다.

공교롭게 당시 금융경기가 악화되면서 비트코인(BTC)의 가격 급락 및 UST의 대량 매도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고 테라 프로젝트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1달러 미만으로 떨어진 UST의 가격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문제의 시발점이 된 앵커 프로토콜은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루나나 이더리움을 맡기고 UST를 빌린 다음, 빌린 UST를 예치하면 ANC라는 또다른 토큰을 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 때 보상으로 지급되는 ANC가 매우 풍부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UST의 대출 이자를 제하고도 연 수익률 20%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디파이 시스템은 수익을 내려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루나와 UST를 매집해 알고리즘 기반으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이 이 '20% 수익률'에 달려들기 시작하자 업게에서도 의구심이 생겨났다. 앞서 많은 디파이 프로젝트가 고수익을 약속하며 출범했지만 대부분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디파이는 당시 3~5.5% 수준 이자를 제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앵커 프로토콜은 테라 프로젝트와 루나의 가치가 향후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설계됐는데, 이 전제가 예상과 달라질 경우 프로젝트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실제로 UST의 '디페깅'이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블룸버그 등 외신과 코인 전문가들은 이를 경고해왔다. UST와 루나를 빌리는 사람보다 이자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의 수요가 훨씬 더 커져 불균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디파이 시스템 내에서 얻어지는 이자 수익보다 지출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고, 테라 생태계를 관리하는 비영리조직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 등이 보유한 준비금이 대거 투입되기도 했다.

문제는 LFG가 보유한 준비금 대부분이 비트코인으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에 당시 시세 변동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비트코인은 급격한 변동성을 보였고 앵커 프로토콜에 자금을 예치해던 투자자들도 청산 리스크에 위협을 느끼자 UST를 대거 매도하는 일종의 '뱅크런'이 발생하게 됐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