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화예술을 즐기는 세계인이 늘고 있다. 'K-팝'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됐다. 'K무비'도 하루가 다르게 인기를 더해 가고 있다. 특정 분야를 넘어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에서 마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21세기 문화예술은 K-컬처가 주도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로서 가슴 뿌듯해지는 느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문화예술은 세계인의 호응을 끌어낼 주요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한국 상품에 대한 코리안 디스카운트를 극복하는 자산이다. 한국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게 막는 코리안 리스크 극복에도 문화예술은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기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를 가장 빨리 적용하는 분야도 문화예술이다. 문화 강국은 국가의 기술 경쟁력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지난 20세기를 하드파워가 주도했다면 21세기는 소프트파워 시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세계 각국이 매년 문화예술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문화예술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다. 원유와 천연가스 판매로 엄청난 부를 챙기고 있는 중동 국가조차도 세계적 미술관을 유치하거나 문화예술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는 등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조류와 비교한 우리 현실은 어떤가. 문화예술계 예산은 국가 위상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게 중론이다. 문화예술도 결국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그런데 특정 분야, 특정인을 제외하고 문화예술계 종사자 대부분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근근이 버티는 실정이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6조7408억 원이다. 지난해 7조3968억 원보다 6560억 원 줄었다. 늘어도 시원찮은 판에 오히려 8.9%나 축소됐다. 정부 재정뿐만 아니라 관련 기금까지 넓게 잡아도 문화·체육·관광 관련 정부 예산은 638조7000억 원의 1.35%에 불과하다.
국가 예산에서 문화예술·체육·관광 분야 비중이 1%를 넘은 게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20여 년 동안 0.35%포인트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다. K컬처 매력을 세계로 확산해서 우리나라가 문화 번영 시대를 선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에 이른다. 그런데 문화예술 관련 예산 비중은 세계 50위권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회와 정부는 문화예술·체육·관광 예산 비중 2% 달성에 전향적으로 나서길 요청한다. 정치권도 이 사안을 특정 분야에 대한 지원의 형평성이나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 강화라는 차원에서 논의해 주었으면 한다.
소프트파워의 가장 큰 강점은 세계인을 우리의 우호 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에서 보듯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한류 팬은 친 대한민국 세력으로 자리 잡아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우리나라 수출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2% 확보는 중요하다. 이 예산은 우리가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미래 투자가 될 것이다.
이범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bhlbhl2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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