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조금 받아 설치했지만
지자체에 신고 안해 불법 통보
수년째 협의 안돼 이용자 피해
철거·재설치 비용만 수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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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용 공용충전기.<전자신문DB>

정부가 보조금까지 풀며 설치해 준 전기차 충전기를 지방자치단체에선 '불법'이라며 철거를 지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수년 전부터 국토교통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가 부처 협의를 통한 대안을 약속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충전기 설치 당시 신고 의무를 알리지 않은 정부에 책임이 있음에도 불법 통보로 이용자만 수백만원의 비용과 불편을 감수하는 처지가 됐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경기 고양시 일산 주민 A씨는 최근 구청으로부터 2018년 1월 설치한 전기차 충전기가 '공동주택관리법' 위반 불법 증설 대상이라며 철거 통지를 받았다.

A씨는 2017년 말 국산 전기차를 구매하면서 환경부의 보조금을 받아 아파트에 충전기를 설치했다. 당시 A씨는 자동차 회사에 몇 가지 서류만 제출했을 뿐 충전기는 정부 보조금을 받은 사업자가 설치했다. A씨는 자동차 회사와 사업자가 요구한 입주자 대표회의 및 관리소장이 승인한 서류만 전달했다. 환경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입주자 대표회의 동의가 조건이었기 때문에 관련 서류만 요청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무도 A씨에게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신고 의무를 알려주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올해 3월에야 구청은 A씨에게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고, 철거해야 한다고 고지했다. 폐쇄회로(CC)TV나 충전기 같은 시설물은 아파트 건축 이후 추가로 증설할 경우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시책에 따라 보조금까지 받아 충전기를 설치했지만 일반인으로는 알기 어려운 법률 때문에 범법자가 됐다. 충전기를 철거하고 다시 설치하는 비용은 수백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수년 전부터 있었고, 정부는 해결책 마련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2018년 당시 수만대의 전기차 충전기가 신고 없이 설치됐으며, 철거를 명령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국토부·환경부·산업부가 협의해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후 5년이나 지났지만 담당자가 수차례 바뀌고 지자체 역시 단속에 소극적으로 흐르면서 사실상 잊혔다. 이런 속사정을 알지 못한 이용자만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A씨는 “입주자 대표회의 동의만 받아오라 해서 그게 다인 줄 알았다”면서 “보조금을 주는 환경부·사업자·구청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라도 알려줬다면 신고했을텐데 이제와 철거하라니 황당하다”고 성토했다.

업계 관계자는 “충전기 관련 규제가 너무 많아서 미신고 등 문제가 되는 충전기가 몇 대인지 파악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면서 “지자체마다 고지 이후 신고하도록 하는 곳이 있고 규정만 주장하는 곳도 있어서 단속도 제각각”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여러 상황을 감안해 환경부, 산업부 등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