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의 국산 게임 '블루 아카이브'가 일본 서비스 2주년을 맞이해 일본 서브컬처(하위문화) 성지라는 아키하바라를 도배했다. 블루 아카이브는 일본 앱스토어 최고 매출 1위 자리에 올랐으며 일본 트위터 트렌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아키하바라의 한 유명 라멘집은 블루 아카이브와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정 메뉴를 판매하고 굿즈를 배포하는데, 손님이 1~2 시간 줄을 설 정도였다고 한다. 뉴욕 원 타임스 스퀘어에도 블루 아카이브 광고가 걸릴 정도라 하니 서브컬처의 인기에 특이점이 왔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국산 서브컬처 게임에 대한 세계적 인기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 팬덤(fandom)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팬(fan)이라는 영어단어에 영토를 뜻하는 돔(dom)을 합쳐 특정 스타들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현상을 팬덤문화라고 한다. 팬덤은 현대 대중문화의 공통 특징이다. 보통 대중이 음악, 소설, 만화, 영화 등에 대해 여러 시대와 지역 별로 존재해왔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심화됐다.
미국에서는 '너드(Nerd)'나 '긱(Geek)'이라 불리는 괴짜 문화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너드는 집에 틀어박혀 만화책을 읽으며 공상과학 영화를 보고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시트콤 '빅뱅이론'에는 너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온라인 게임을 하고 피규어에 집착하는 천재 과학자의 서브컬처는 코믹하게 보이지만, 최근에는 실리콘 밸리의 주요 인물 여럿이 너드라는 인식에 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 패션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매일 같은 옷을 입었던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 마크 주커버그의 회색 티셔츠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오타쿠(オタク)' 문화가 특정 집단을 넘어 일상화되고 있다. 오타쿠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피규어, 코스프레 등 서브컬처에 탐닉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것에 그칠 뿐 아니라 정보나 상품을 수집하고 2차 창작을 하기도 한다.
한동안 오타쿠에 사회적 성향이 떨어지는 부정적 이미지도 있었으나 소비시장 주체로 떠오르면서 산업혁신을 가져오는 원동력으로 추앙받는 모습도 보인다. 일본 전자공업 발전과 함께 성장한 아키하바라는 이런 측면에서 상징적 공간이다. 첨단 전자기술제품 중심 공간이 서브컬처 중심지로 재탄생했다. 아키하바라의 서브컬처 캐릭터는 지역축제, 유튜브, 지하철, 잡지 등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
국내에서도 '덕후'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좋아하는 취미에 열광하는 마니아를 총칭하는 의미다. 여기에서 '입덕' '덕질' 같은 말이 파생됐다. 입덕은 덕후가 됐다는 뜻이다. 덕질은 덕후가 돼서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 관련 정보나 물건을 찾아보고 모으는 행위를 의미한다.
덕후의 분야는 연예인, 드라마, 여행, 영화 등 일본 오타쿠와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아이돌 팬덤으로 굿즈(goods)를 사 모으기도 하고 심지어 '스벅 덕후'는 스타벅스 브랜드가 있는 많은 상품을 모은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팬덤 '덕질'이 산업으로 진화했다. 과거에는 아이돌을 쫓아다니던 팬이었다면 비대면 상황에서 좋아하는 분야 서브컬처를 온라인으로 '현질(현금을 지르는 것)'해서 육성하는 팬이 된 것이다.
팬데믹 동안 K-POP은 세계적 인기를 구가했고, 팬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를 주도적으로 만드는 단계로 옮겨갔다.
몇 해 전 방영된 '프로듀스 101'과 같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팬이 좋아하는 후보를 데뷔시키는 새로운 방식이 대세가 됐다. 팬이 자발적으로 사비를 들여 홍보를 하는 새로운 흐름도 나타났다. 이런 D2C(Direct to Customer) 사업모델은 우리나라 웹툰이나 웹소설로도 확대되고 있다.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작가는 피드백을 스토리에 반영했다. 결과적으로 팬덤은 콘텐츠 창작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현질'을 한다.
게임산업의 서브컬처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게임산업은 대규모 다중 사용자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과 같은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확보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 중이다. 최첨단기술인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 기술을 활용해 전 세계적인 팬덤 유치 노력을 하고 있다.
요즘 덕질은 혼자 끝나지 않는다. 네트워크 효과를 가져와 선순환을 일으키는 데 의미가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된 덕질은 다른 사람 공감을 이끌어낸다. 매력적인 게임 캐릭터에 꽂힌 픽시브, 트위터 일러스트레이터를 통해 팬아트가 쏟아져 나온다. 게임을 기초로 한 시나리오가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화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정책 당국은 팬덤 경제의 특성을 이해해 K-콘텐츠를 수출산업으로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팬이 열광하는 콘텐츠 초기부터 직접 선택하고 육성하는 데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 지원해야 한다. 또 등급분류를 포함한 정부 중심 규제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 팬덤 경제에서 앞서갈 수 있는 민간 중심 콘텐츠 산업 경쟁력 확보방안을 연구할 때인 것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서울대 AI연구원 객원연구원 smjeon@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