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 김춘수의 시 '꽃'의 한 부분이다.
문학적으로는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한다면 '측정'과 '측정 이전' 두 개 이상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 중첩' 즉, 중첩상태가 깨어진 '결어긋남'이 내포돼 있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측정, 하나의 몸짓은 이름을 불러주기 전 상태인 중첩상태, 불러주어서 꽃이 된 상태는 측정으로 중첩이 깨진 결어긋남으로 비유가 가능할 것이다. 아마 우리 문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비유 가능한 대표 문구일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이러한 중첩, 측정, 결어긋남 등 현상과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 중첩상태 큐비트를 이용한다. 대표 수학 난제로 손꼽히는 소인수 분해 문제를 짧은 시간 안에 풀어낼 수 있는 컴퓨터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기술규제 대상에 양자컴퓨터를 포함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자컴퓨터는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주요 도구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산업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양자컴퓨터
최근 글로벌 기업 사이에서 자사 연구 난제를 양자컴퓨터로 해결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에너지는 퀀티니움과 손잡고 탄소저감을 위한 탄소 포획기술 개발에, 자동차 회사 벤츠는 프사이퀀텀과 협력해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에어버스는 비행기 무게·매출·항공연료·소요경비 간 최적 조건을 찾는 데 양자컴퓨터를 활용했다.
이외에도 바이오젠, 파이자, 머크 등 제약기업들은 신약물질 개발에 양자컴퓨터를 활용하기 위해 '큐팜(QuPharm)'을 결성하는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양자컴퓨터 활용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려면 안정적인 큐비트 구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다양한 환경 및 요인으로 인해 완벽한 큐비트 구현은 쉽지 않다. 해결책으로 '양자 에러 보정(QEC:Quantum Error Correction)' 기술이 주목된다. 큐비트 오류를 보정하기 위해 동일한 큐비트를 여러 개 구성한 논리 큐비트 개념이 제안되고 있다.
양자컴퓨팅의 상용화에는 대용량 큐비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큐비트 확장을 위해 IBM, 구글, 인텔, 아이온큐 등 글로벌 기업들이 초전도, 실리콘, 이온트랩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용량 큐비트 양자 프로세서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다.
◇양자컴퓨터는 과학 및 공학 토털패키지
양자컴퓨터는 양자프로세서 소자 제작을 위한 인프라(반도체 공정, 극저온 기술 등), 큐비트 생성·유지를 위한 양자소자 시스템(양자프로세서, 양자메모리 등), 큐비트 제어를 위한 양자시스템 하드웨어(HW), 양자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위한 양자 소프트웨어(SW), 양자 알고리즘, 관련 응용 분야(소재 개발, 금융, 제조, 보안 등)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이 형성돼 있다.
가치사슬에서 보듯이 양자프로세서가 안정적으로 동작하려면 큐비트 생성 및 양자 상태 유지에 필요한 외부환경 차폐가 필요하고, 큐비트 제어를 위한 무선 주파수(RF) 회로, 신호처리 기술, 광학 등 다양한 학문이 적용돼야 한다. 양자컴퓨터는 과학과 공학이 집대성된 토털패키지인 셈이다. 그래서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려면 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 외에도 이학과 공학적 사고가 결합된 융합인재 양성이 병행돼야 한다.
◇양자컴퓨터 개발은 지속 투자가 필요
최근 민·관 모두에게서 양자역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관련 연구 및 개발자들에게는 환영받을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려가 공존한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작곡가 푸치니 이력을 보면, 그는 대중적으로 흥행 성공작을 내놓기 전에도 출판사로부터 9년 이상을 지원받았다. 별다른 작품 없이 흥행에 실패한 작품을 작곡했어도 장기적인 지원은 지속됐다. 특별한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도 그의 잠재력을 믿고, 작품을 낼 수 있도록 끈기를 가지고 지원한 덕에 우리가 오늘날 라보엠, 토스카, 투란도트 등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자컴퓨터는 전자, 이온 등 개별입자 제어가 필수다. 이로 인한 관련 기술을 극복하기 위한 난제가 산적해 있고, 해결을 위해서는 작곡가 푸치니의 경우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끊기지 않는 연구지원이 필요하다.
글 : 권요안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