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지식 생산의 새로운 양식 'A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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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챗GPT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지식 전달체계가 요동치고 있다. 시장에서는 챗GPT를 둘러싼 기술과 가치사슬의 변화가 가져올 경제 규모에 대해 다양한 진단을 한다. 지난 해 12월 오픈AI의 챗GPT 출시 이후 일어나는 변화는 매우 구체적이다. 지금까지 기술 변화는 기술의 급격한 진화를 가져오기까지 적어도 20~30년의 시간을 두고 진행됐다. 디지털 혁명은 20세기 후반 내내 성숙기를 거쳤고, 최근 비약적으로 신장한 메타버스도 2000년대 초반의 세컨드라이프 이후 20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이 적응할 만한 시차를 허용했다.

우리는 이러한 과학적 발견이나 혁명적 변화를 토머스 쿤의 말을 빌려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설명해 왔다. 과학혁명의 역사를 연구하고 이를 추적한 쿤은 1962년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말로 변혁하는 과학을 압축해서 표현했다. 이후 기술 변화는 물론 가치나 제도 등 사회적 변화에 대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뉴노멀(New Normal), 신창타이(新常態) 등 영어권·한자문화권 등에서 통용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 가져오는 지금의 변화 진폭은 패러다임의 변화로 설명하기에는 구체적이고 혁명적이다. 특히 지식생산 과정은 생산양식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학자의 전유물이던 경제적 생산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써 온 생산 양식이 지식 발전에서 전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어떤 지식과 사상 또는 이념의 옳고 그름' '수학적 문제 해결과 물리적 현상' 등에 대한 인간 지능의 탐구 과정이 축적 시간을 거쳐 증명되고 정오 논쟁을 통해 지식화되어 갔다. 그런데 올해부터 지식사회는 기존의 생산 양식으로 산출되는 지식을 허무하게 만들 것이다. 예컨대 어떤 분야의 박사가 되기 위해 300권의 책과 수백 편의 논문을 읽고 거기에 몇 줄의 새로운 견해를 붙여서 독창적인 연구 결과물을 제출한다. 설령 그렇게 고난도의 학습을 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형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자나 교수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서게 된다. 현장에서 기술 개발로 밤을 새워서 기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거쳐 다른 것과 약간 구별되는 독창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그 창의성을 평가하는 표절 또는 카피 등의 기준을 정해 독창성이나 특허를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AI챗봇의 진화로 이제 이러한 기준도 의미가 없어졌다.

그런데 1억7500만개의 매개 변수를 계산한 AI 챗봇의 힘을 빌려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제출하는 리포트나 취업을 위해 회사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가 쓰인다. 심지어 이 작업에 AI가 참여했는지 판별하는 작업도 AI가 수행한다고 야단이다. 이러한 데 시간을 쏟기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인정하고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고 성적을 매기는 방법을 폐지하거나 양식이 완전히 다른 교과 과정을 도입해야 한다. 회사는 자기소개서의 진위 여부를 찾기 위해 애쓰기보다 지원자의 숨어 있는 다른 역량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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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혁신에 저항하는 사례로 17세기 프랑스에서 직조기술을 개발한 생산방법을 허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어리석은 판결이 생각난다. 자신이 발명한 방법으로 천을 짜려는 제조업자에 대해 직조기를 이용해서는 안 되며, 실의 수와 길이까지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판결문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16세기 말~18세기 중엽의 영국에서 양 떼와 농민 간 토지 이용을 둘러싼 '인클로저 운동'도 같은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술의 중요성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기존의 '보통 지식' 획득만으로 사회 지배 엘리트가 되던, 오랜 학벌사회가 가로막고 있던 지식 생산 양식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챗GPT와 같은 'AI가 대체할 지식'은 무엇이며,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아마도 2023년 이후 멀지 않은 시간에 그 모습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필요한 지식과 논쟁 없는 과학적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평균적인 지식은 마치 직조 기술을 배운 제조업자가 짜 놓은 천처럼 견고하며 아름다운 색으로 염색까지 해서 인간에게 적시에, 유용하게 공급될 것이다.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 표절이든 카피든 팩트를 비틀지 않는다면 허용하는 단계가 도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고 이제 다른 지식 생산 양식의 발전 단계를 맞이할 것이다. 최근에 자주 사용되는 '초격차'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기술 패권시대에서 기술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속도의 차이를 의미한다. 시간적 개념이다. 후발 주자가 따라오는 이상으로 앞서간다는 의미다. AI 시대의 개념은 시간상의 차이를 넘어 생산양식의 변화를 담은 말로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패러다임 상의 지식들은 묶어 역사적 유물로 보관하고 새로운 발견으로 나아가 보자. 과학과 기술 발견은 전혀 다른 영역에서 진행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학교는 어떻게 조직되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사업해서 이득을 획득하는 방법을 묻고 답을 찾는 접근법이 달라질 것이다. 3년 전에 출간된 경영학 교과서로 올해 이후의 기업 조직, 인사, 회계 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그럭저럭 모양은 낼 것이다. 특히 기술 경영에 관한 도움을 받으려면 어제의 정답을 잊으라고 권하고 싶다. 지난 3년 동안의 팬데믹 시기에 AI를 이용해서 백신 개발에 성공한 '모더나' 같은 유니콘 기업의 사례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닐 것이다. AI를 이용하지 않고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어제 눈이 침침해서 문자 교열이 어렵다는 동료 교수에게 안경까지 써 가며 애쓰지 말고 우선 AI를 이용한 챗봇 이용 방법을 배울 것을 권했다. 지식인이든 지식노동자든 기술 개발자든 기술을 이용한 사업가든 새로운 생산 양식 익히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새로운 지식생산과 학습 모형으로서 다양한 산업 및 기술에 AI를 접합하는 'AI+X' 시대에 들어섰다.

조재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필자〉>조재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에서 비교정치학 석사, 노동정치학 박사를 취득한 후 1996년 영국 옥스퍼드대 켈로그칼리지에서 포스트탁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비서실 국정과제비서관을 지냈고, 중국 베이징대에서 정무관리학원 초빙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7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고, 2017년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를 역임하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노동정책 전문가인 조 이사장은 2021년 3월 폴리텍에 취임해 'AI+x 인재양성 체계 도입' '메타버스연구센터 설립' '국제교류센터 설치' 등 과감한 혁신으로 글로벌 폴리테크니션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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