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신기루와 낙타

바짝 말라 있던 기업공개(IPO) 시장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연초 들어 상승세를 보이는 증시에 힘입어 지난달 상장에 나선 기업들도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특히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100%, 상한가 30%를 기록하는 이른바 '따상' 종목이 지난달 2개나 나오면서 공모주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부풀어 오르고 있다.

벤처투자업계의 관심은 단연 오아시스 상장이다. 투자시장 돈 가뭄으로 연초 새벽배송 1위 업체 컬리가 상장을 철회한 가운데 이뤄지는 상장인 만큼 업계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 오아시스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은 약 9679억~1조2535억원이다. 쏘카 이후 오랜만에 등장하는 1조원대 대어급 IPO 주자다.

뉴욕증시에 쿠팡이 상장하던 2년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벤처투자업계에서 자금을 쓸어 담던 새벽배송 업체는 자기 길을 걷고 있다. 대기업이 대거 참여하면서 레드오션이 됐다는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다. 오아시스가 7~8일 이뤄지는 기관투자가의 수요예측과 이후 이어질 일반 청약에서 받을 성적표가 향후 회수 시장을 전망할 가늠자로 여겨진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LB인베스트먼트의 상장 역시 오아시스만큼이나 IPO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액셀러레이터 업계 최초 상장과 업계 10위권 대형 벤처캐피털(VC) 상장이라는 점에서다. 비상장 기업에 대한 투자 기대감이 공모시장에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 확인하기 좋은 기회다.

지난해 말부터 벤처투자업계 안팎에서는 투자 혹한기, 돈 가뭄이라는 말이 이어진다. 지난해 신규 벤처펀드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신규 투자가 전년 대비 소폭 감소한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신규 투자기업 수가 늘고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도 늘었지만 투자 심리는 여전히 말라 있다. 컬리, 케이뱅크와 같은 대어급 주자들이 상장을 늦출 정도로 회수 시장이 경직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규모 있는 투자사의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생태계 전반에 걸쳐 위험신호가 번지는 꼴이다.

신기루는 낮은 곳과 높은 곳의 공기 온도 차가 클수록 빈번하게 나타난다. 벤처투자 시장과 공모시장 간 괴리는 시장 침체 이전에도 지금도 여전하다. 회수 시장 단 한 곳이 막혔을 뿐인데도 투심은 말라 버렸다. 비상장 기업의 기업가치 고평가가 신기루인지 아닌지도 이제 슬슬 가려질 때가 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투자 없이도 수년을 버티는 낙타형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외부 자금을 수혈해서 급성장하는 유니콘이라는 기대가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하다.

오아시스 상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더라도 벤처투자 시장의 현실을 직시할 기회가 될 것이다. 유니콘 시대가 될지 낙타 시대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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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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