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옛날 PC 시절에나 유명했지.”
평소 게임을 즐기는 중국의 여러 지인이 한국 게임 7종에 대한 외자판호 발급 소식을 듣고 보인 반응이다. 판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게임 관련주가 급등하고, 중국 시장 재진출 관련 장밋빛 전망이 제기된 국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인정받고 압도적인 이용자 수를 자랑하는 자국 게임에 대한 은근한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졌다.
연간 게임산업 매출 규모가 약 56조원, 이용자 수 6억6624만명에 이르는 중국은 국내 게임사에 가장 매력적인 시장이다. 한국과 같이 모바일 게임이 대세인 것은 물론 유료 재화 구입이나 아이템·캐릭터 뽑기, 빠른 성장을 위해 과감한 추가 결제를 마다하지 않는 이용자 행태도 비슷하다. 국내 게임사가 가장 잘하는 영역에서 급속한 외형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한령으로 신작 출시 길이 막히고 한류 콘텐츠에 대한 높은 '만리장벽'이 구축되는 동안 중국 게임산업 경쟁력 역시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호요버스가 개발한 '원신'은 2020년 출시 직후 미국 양대 앱마켓에서 매출 1위를 달성했다. 불과 1개월여 만에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랐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충성도 높은 팬층을 확보, 매출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판호를 받은 한국게임이 흥행보증수표이던 것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중국 게이머는 더 이상 게임을 즐기는 데 국가를 따지지 않는다. '재미'라는 게임 본질을 기본으로 갖추고 깊이 있는 세계관, 매력적인 캐릭터, 차별화된 지식재산권(IP) 없이는 중국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또 다른 과제는 장르적 다양성이다.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RPG)과 슈팅 등 기존 인기 장르 이외에 새롭고 과감한 도전이 요구된다. 예컨대 중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서브컬처 장르에도 주목할 만하다. 시프트업이 개발, 레벨 인피니트가 서비스하고 있는 '승리의 여신:니케', 서브컬처 본진으로 일본에 진출해서 우수한 성과를 올린 넥슨 '블루 아카이브' 등은 중국 게이머 사이에도 회자되는 기대작이다.
판호 발급은 중국 시장 개방과 진출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앞으로 현지 퍼블리셔와 긴밀한 협력을 통한 철저한 준비와 현지화 작업이 남아 있다. 운영 측면에서 중국 게이머와 국내 이용자 간 차별화 논란이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조율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국내 게임사가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중국 시장이 개방 기조로 돌아섰다. 다양한 콘솔 신작 출시로 북미·유럽 서구권 시장 공략도 본격화한다. 변화 기로에 선 K-게임의 올해가 글로벌 도약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