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디지털 대전환의 기로에 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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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코로나19가 휩쓴 세계는 전쟁터다. 바이러스와 전투에 활용된 고전적 전술은 물리적 거리두기다. 학교 문을 닫고, 국경을 봉쇄하며, 항공편을 줄이고, 집회를 금지하는 것으로 급한 불을 껐다. 그런데 불과 30년 전이었다면 생각하지 못할 신무기가 일상을 회복시켰다. 거의 모든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플랫폼 사회의 디지털 기술 덕분이다. 온라인 영상회의, 음식과 상품을 주문할 수 있는 배달앱, 굳게 닫힌 극장을 대체한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원격형 집단'은 팬데믹 충격에서 쉽게 회복했다. 그러나 직접 접촉의 고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착형 집단'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 결과 소득과 취업 등에서 불평등이 커졌다.

국가별 방역 성과도 디지털 역량과 제도적 기반에 따라 갈렸다. 접촉 추적 앱을 활용해 확진자를 추적하고 격리할 역량을 갖춘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 방역 성적표가 갈렸다. 한국은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토종 기축 플랫폼이 제공한 QR 체크인 덕분에 자체 플랫폼이 없는 유럽연합(EU)·인도·일본 등에 비해 신속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검사(test)·추적(tracing)·치료(treatment)하는 3T 전략을 실행할 수 있었다.

미국은 세계적 빅테크 기업을 가졌지만 정작 디지털 기술을 방역에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앞선 기술을 어떻게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를 위해 활용할지 사회적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디지털 G2 시대의 강자 중국은 자국 플랫폼 위챗과 알리페이에서 구동되는 '건강코드'에 감염 여부 이외 이동·금융정보 등 개인정보까지 결합했다. 그리고 이것을 AI 알고리즘으로 예측적으로 분류하고 대응하는 강력한 시스템을 갖추었다. 국가주의적 패놉티콘 감시사회로 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은 제도나 규제방식과 맞물려 그 발전 방향이 결정됐고, 산업화라는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전쟁이나 경기 불황, 팬데믹 등은 갈림길에 들어선 산업화의 속도를 빠르게 했다. 자동차는 유럽에서 최초로 발명됐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의 반발에 막혀 20세기 초 기계화와 대량생산에 거부감이 없는 미국에서 포디즘으로 정착했고,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글로벌 표준이 됐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의 연이은 오일쇼크와 식량난은 포디즘을 와해시켰고,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숙련 기반 유연생산방식을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지금 목도하는 21세기형 디지털 전환은 마치 쇼트트랙 경기에서 추월이 가능한 코너 돌기와 같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이 그 기회를 잡고 디지털 G2로 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우리가 따라가기엔 위험한 모델이다.

한국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토종 플랫폼이 살아남은 나라라는 점에서 세계적 빅테크 플랫폼을 독점한 미·중과 다르고, 자체 플랫폼이 없는 EU나 일본과도 다르다. 디지털전환이 만들어 낸 기회의 신대륙에는 여러 유형의 플랫폼 사회가 들어서고 있다. 서인도제도에 발을 내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인도라고 생각했고, 꾀꼬리 소리가 아름다웠다고 썼다. 그러나 그것은 신대륙이었고, 꾀꼬리는 없었다. 중국식 패놉티콘 사회, 미국식 승자독식 사회 또는 기득권 세력에 규제가 포획된 지대추구 사회는 우리에게 최고 선택지가 아니다. 혁신과 공유의 공동번영 사회로 가는 길은 좁다. 그리고 이 회랑을 무사히 통과하려면 신대륙의 지형을 읽는 감수성과 집합지성, 기업-정부-시민사회-학계를 아우르는 공론화의 장이 절실하다. 지난 10월 출범한 '디지털 소사이어티'의 활동에 기대하는 이유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jyy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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