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사람이 '꿀잠'을 염원한다. 수면의 양과 질은 다음날 컨디션을 좌우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면이 체력을 회복하고 조직을 재생시키며 체온과 호르몬을 조절하고, 기억을 저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로 밝혀졌다.
그런데 올해 8월, 수면의 양과 질이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발표됐다. 이번 연구는 수면이 단순히 개인의 건강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해 더 화제가 되고 있다.
◇수면의 질이 이타심과 관련된 뇌 영역에 영향
이번 연구를 이끈 미국 UC버클리 심리학부 연구팀이 주목한 인간의 특징은 '이타심'이다. 연구팀은 연구 보고서의 첫머리에 '사람들은 서로를 돕는다(Humans help each other)'라고 적으며 이타심은 인류가 현대 문명의 진보를 이뤄낼 수 있었던 강력한 힘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처럼 인류에게 중요한 이타심이 수면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각각 개인, 공동체, 국가 단위로 수행한 세 가지 연구로 확인했다. 개인 수준에서 연구는 fMRI(기능적 자기공명 영상)를 활용했다. fMRI는 혈류의 변화량을 감지해 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24명을 대상으로 8시간 잠을 잤을 때와 아예 잠을 자지 않았을 때 각각 fMRI를 촬영했다.
그 결과 피험자가 잠을 자지 않았을 때 촬영한 fMRI 영상에서는 공통으로 사회적 인지 뇌 네트워크(social cognition brain network)로 알려진 뇌 영역의 활동이 감소했다. 사회적 인지 네트워크는 내측 전전두엽 피질(mPFC)과 측두엽-두정엽 접합부(TPJ), 설전부(precuneus)로 구성된 영역으로 타인의 상태와 필요, 관점을 파악하고 고려할 때 활성화된다. 이 영역이 비활성화되면 타인에 대한 공감이 결여되고 자비로운 행동이 줄어든다.
수면이 불충분한 상태에서는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관여하는 뇌 영역의 활성도도 줄어들었다. 즉, 수면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행위와 관련된 영역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연구팀은 수면이 실제로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행동 변화로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13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약 3일 동안 피험자들에게 수면 시간, 깨어난 횟수 등 수면에 관련된 내용과 깨어난 후 다시 잠이 들 때까지 사람들과 상호작용했던 경험을 기록하게 했다. 이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지난밤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을수록 타인을 도우려는 열의가 줄어들었다. 이때 수면 시간보다는 수면의 질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연구를 이끈 매튜 워커 미국 UC버클리대 심리학부 교수는 “수면의 양과 수면의 질 모두 사람의 정서적,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며 “하지만 이타심에 한해서는 수면의 양보다는 수면의 질의 영향력이 더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미국 전역에서 2001~2016년 사이에 행해진 3백만건의 기부와 수면 시간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매년 서머타임이 시작하는 시기에 미국 전체 기부 금액이 평균보다 10%가량 감소했다. 서머타임이 시작하는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수면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서머타임을 실시하지 않는 애리조나와 하와이주 등에서는 이러한 기부금 변화가 없거나, 감소 폭이 다른 주보다 크지 않았다.
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수면 부족은 타인을 위한 행동과 관련된 뇌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실제로 공동체 내에서 타인을 위한 행동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기부금 감소 등 사회 전반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워커 교수는 “수면 손실은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개인 간의 유대는 물론 국가 전체의 이타적 정서까지 위협한다”고 말했다.
이어 워커 교수는 현대 사회의 수면 부족 현상을 우려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수면의 양과 질이 줄어드는 현상을 '범세계적 수면 부족 대유행'이라고 비유하며 “이미 다양한 연구가 수면 부족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건강 문제를 지적했고 이번 연구로 사람의 사회성마저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좀 더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데 신경 쓰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심각한 수면 부족 국가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2016년 OECD의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51분으로, OECD 평균인 8시간 22분보다 31분 적다. 참고로 미국은 8시간 48분, 캐나다는 8시간 40분, 프랑스는 8시간 33분이었다.
침대 제조사인 씰리가 2016년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이 회사는 한국, 호주, 중국,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1만1381명을 대상으로 수면 시간을 조사해 '수면 빚(sleep debt)'을 계산했다. 수면 빚은 하루 권장 수면 시간을 채우지 못해 누적된 수면 부족 시간을 의미한다. 1년 동안 쌓인 수면 빚이 한국 여성은 약 15일, 남성은 18.5일이었다. 한국은 5개국 중 불면증 비율이 중국 다음으로 높았다.
게다가 한국인의 수면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수면장애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4년 42만명에서 2021년 72만명으로 연평균 8.1% 증가했다.
성인의 적정 수면 시간은 7~8시간이다. 수면 부족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한국 사회에도 양질의 수면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글: 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