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감염병과 지피지기 백전불태

Photo Image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김연재 전문의 (감염병정책개발팀 팀장)

누적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2600만명을 돌파했다. 5000만 국민 가운데 절반은 코로나19 감염을 경험했을 정도로 전 국민이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오랜 기간 큰 영향을 받았다. 아직도 코로나19는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가 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마스크 쓰기, 거리 두기, 백신 접종, 일상 속 방역을 위한 노력은 견고하게 학습돼 언젠가 나타날 위기에도 우리에게 강력한 방어막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성어를 떠올려 본다. 흔히 아는 것처럼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신종 감염병은 코로나19가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가 그랬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도 있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처럼 인류와 함께한 지 40년이 넘은 신종 감염병도 있다. 그 가운데 HIV·AIDS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이제 더 이상 죽음의 병은 아니다. 지난 40여년 동안 많은 치료법과 치료제가 개발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HIV에 감염됐더라도 꾸준히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만 유지하면 에이즈로 발전되지 않으며,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평생 관리가 가능하다.

팬데믹의 장기화 속에서 우리가 배운 것이 있다면 지속 가능한 감염병 대응 역량 구축이다. 유행 감염병에 대응하면서도 다른 감염질환의 관리를 포함한 필수 의료 서비스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며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다른 감염병에 대한 관리가 충분하지 못했다. 그 가운데 가장 취약한 감염병으로 HIV가 꼽힌다. 구체적으로는 HIV 진단 검사가 크게 위축됐다. 국내 공중보건 대응 역량이 코로나19 방역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보건소는 HIV 조기 진단체계의 중추역을 담당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보건소가 HIV 검사 업무를 중단하게 되면서 2020년 HIV 검사 수가 전년 대비 59.4% 감소했다. 보건소 검사를 통해 HIV가 진단된 경우는 54.8%까지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보건소 HIV 검사의 축소는 진단되지 못한 '깜깜이' HIV 감염인이 늘었을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가능해진다.

HIV는 조기 검사와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항바이러스제를 잘 복용해서 바이러스가 검출 한계 미만으로 나오는 감염인은 바이러스 전파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감염 전파의 매개체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HIV 감염인을 조기에 발견해서 신속히 치료하면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를 빠르게 유지할 수 있고, 이 경우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글로벌 HIV 치료 트렌드도 '신속 치료'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HIV 감염이 진단된 당일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즉시 시행하는 것이 핵심 치료 전략이다. 미국 국제항바이러스학회(IAS)에서는 대부분의 HIV 감염인에게 가능한 한 빨리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개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1년 HIV·AIDS 진료지침을 통해 모든 HIV 감염인은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을 면역 상태와 상관없이 바로 시행할 것으로 권고했다.

다행히 올해 상반기에 서울 소재 보건소 25곳 가운데 22~23곳에서 보건소 HIV 검사 업무를 재개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는가. 백전불태의 HIV 치료 전략은 모두 준비됐다. 이제 HIV 검사 활성화로 지피지기가 선행돼야 할 차례다. 주기적인 HIV 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 및 치료는 전 세계가 HIV·AIDS 종식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길일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정책개발팀 김연재 팀장 arckyj@nmc.or.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