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2010년 바이오를 태양전지, 자동차 배터리, 발광다이오드(LED), 의료기기와 함께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정했다. 이듬해 출범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0년 만에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 세계 1위가 됐다. 바이오를 반도체에 버금가는 미래 먹거리로 육성한 결과다.
삼성바이오 강점은 규모의 경제와 스피드다. 10여년간 조 단위 투자를 통해 1·2·3공장을 합쳐 36만4000리터 생산능력을 확보하며 생산능력 기준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부분 가동을 시작한 4공장이 내년 완전 가동하면 생산능력은 62만리터로 격차가 더 벌어진다. 11만평 규모 제2 바이오캠퍼스 부지도 확보해 놨다. 제조경쟁력으로 2017년 흑자전환에 성공한 이후 2020년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올해 아직 한 분기가 남은 상황에서도 3분기 말 누적 기준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전방산업인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어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성장도 기대된다. 제약사는 설비 투자 대신 신약개발 R&D에 역량을 집중하고 코로나19 이후 생산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아웃소싱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바이오 CDMO 시장은 2026년까지 연평균 10%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그러나 사업 포트폴리오가 항체의약품에 편중돼있고 아직 위탁개발(CDO) 부문 경쟁력이 취약한 것은 풀어야 할 숙제다. 업계 1위 스위스 론자보다 생산능력은 앞서면서 매출이나 시장점유율에서 차이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CDO는 제약사 등을 대상으로 세포주, 공정 개발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삼성은 2018년 CDO 사업에 진출했으며, 3년 만인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4년 뒤 CDO에서도 론자를 따라 잡는다는 목표다.
우시바이오로직스와 후지필름다이오시스 등 경쟁사가 공격적인 증설을 진행하고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도 속속 이뤄져 수주 경쟁이 심화되는 것도 극복할 과제다. 한국신용평가는 5월 삼성바이오로직스 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상향 조정하며 내놓은 보고서에서 “삼성이 항체의약품 분야 설비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한편, mRNA 원료의약품, 멀티모달 플랜트 건설, CDO, 바이오 신약 개발 역량 강화 등 사업다각화를 추진하지만 다수 성장전략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역량이 분산되거나 투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으므로 명확한 우선순위 통제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이 바이오를 제2 반도체 사업으로 키우려면 신약 개발 역량 확보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CDMO 1위 론자의 지난해 매출은 54억스위스프랑(약 7조7000억원). 제약 시장 1위 존슨앤존슨(약 134조원)이나 2위 화이자(약 116조원)에도 크게 못 미치는 실적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반도체 매출은 94조원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50%를 인수하며 의약품 연구개발 역량을 내재화했다. 신약 개발에 도전할 기반은 갖췄으나 글로벌 수준과는 괴리가 크다. 신약 개발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자체 개발보다는 외부 기술 도입과 인수합병(M&A)을 통해 신약 파이프라인이나 신약 개발 역량을 확보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삼성 출신 전병희 싸이토젠 대표는 “신약 개발을 독자적으로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전문인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만큼 M&A 후 스케일업을 하는 전략이 유효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CMO를 통해 바이오 사업 가능성을 보고 CDO 사업을 통해 글로벌 빅파마들이 어떤 전략으로 신약을 개발하는지 간접 경험이 가능하다”면서 “에피스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면서 임상부터 인허가 관련 경험도 많이 쌓고 있는 만큼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요 바이오 CDMO 설비 현황 및 전망(단위 :kL)>
(자료: 한국신용평가)
<주요 글로벌 CDMO 및 제약사 지난해 매출(단위: US달러 환산)>
(자료: 업계 취합)
<2020년 기준 바이오 CDMO 시장점유율>
(자료: 프로스트앤설리반, KHIDI)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