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슈퍼 컴퓨팅과 대한민국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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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

디지털 대전환이 이뤄지는 시대다. 디지털전환의 핵심 요소인 데이터를 더욱 많이 확보하기 위해 세계는 연구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활성화하고 있다. 데이터 전면 개방을 목표로 하는 '오픈사이언스' 확대가 이런 움직임의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국가 간에 유의미한 데이터를 더 확보하기 위한 과학기술 분야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마치 냉전 시대의 군비경쟁을 방불케 하는 과학기술 패권 경쟁으로, 이른바 데이터 전쟁 시대가 도래했다. 데이터 전쟁에서 국가의 흥망성쇠는 국가 차원의 데이터 활용 능력이 가를 수밖에 없다. 데이터를 잘 활용하는 것, 즉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치를 더하며 다시 새로운 데이터로 생산해 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이렇게 데이터를 잘 활용하기 위한 핵심 연구 장비로 떠오른 것이 바로 '슈퍼컴퓨터'다.

디지털전환과 데이터 전쟁 시대를 맞아 슈퍼컴퓨터는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과학기술·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혁신을 지원하는 핵심 국가전략자산으로까지 인식되는 상황이다. 과학의 지속 발전과 산업 경쟁력,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 강화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지난 1988년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 슈퍼컴퓨터 1호기를 도입했다. 기초 과학 분야는 물론 기상 예측, 대륙붕 탐사, 신제품 개발 등 연구계와 산업계 전반에서 슈퍼컴퓨터가 원활하게 활용되도록 오랫동안 지원해 왔다. 2018년 세계 11위 성능으로 구축된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은 우주 은하 형성 기원 연구, 반도체 소자 등 신소재 개발, 다양한 생명과학 분야 연구, 효율적인 가스터빈 개발 등을 비롯해 지난 4년 동안 600여건의 방대한 연구과제에 활용됐다. '국제 코로나19 고성능컴퓨팅 컨소시엄'에 참여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연구에도 쓰이고 있다.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연구개발(R&D) 역시 슈퍼컴퓨팅 자원을 필요로 한다. 입자가속기, 중력파 관측기, 전파망원경 등 거대 실험 장비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양의 빅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전에 없이 중요하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이외에도 재난·안전, 바이오·의료, 기후·환경을 비롯해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컴퓨팅 자원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로는 연구자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의 최대 사용률은 90%에 육박할 정도로 포화돼 있다. 연구자의 추가적인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기존 사용자도 슈퍼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 상황에서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보다 20배 이상 빠른 600페타플롭스(PF) 성능의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를 2024년 초 KISTI에 구축하기로 했다. 이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연구자, 새로운 인프라 활용에 목마른 이들에게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는 CPU와 GPU를 모두 탑재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이 때문에 거대 시뮬레이션 연구는 물론 인공지능(AI) 분야의 다양한 연구도 폭넓고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의 GPU 탑재로 그동안 불가능하던 초대형의 AI와 머신러닝 연구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외에도 나노소재, 국방 안보, 자율주행, 제조 기반 기술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그 활용 폭을 더욱 확대하게 된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50큐비트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한 알고리즘 개발과 사전 테스트 역시 앞으로 도입하게 될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에서 수행될 예정이다.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의 도입은 현 정부가 추구하는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현에도 기여할 것이다. 디지털플랫폼 정부란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디지털플랫폼을 기반으로 두고 그 위에서 국민·기업·정부가 함께 사회문제 해결과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정부를 이르는 말이다.

디지털플랫폼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양질의 데이터 전면 개방과 활용 촉진을 중점 과제로 삼고 있다. KISTI는 이미 연구 데이터, 오픈액세스 논문, 국가 R&D 정보, 과학기술 분야 기계학습 데이터 등 양질의 데이터를 구축하고 자체 플랫폼을 통해 국민에게 제공해 왔다. 지능형 정보분석, 사이버 보안관제 등 데이터 활용 인프라도 서비스하고 있다.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를 활용해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고 대한민국의 디지털 대전환을 견인함으로써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문화예술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기존 '패스트 팔로어' 지위를 벗어던지고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변화하고 있다. 퍼스트 무버로 확고히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핵심 분야에서 누구보다 빠른 솔루션을 도출해 경쟁자들에게 쉽게 따라잡히지 않을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이 국내 연구자가 세계적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초격차 기술 확보에도 기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슈퍼컴퓨팅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든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 jaesoo@kisti.re.kr

<필자소개> 김재수 KISTI 원장은 30여년 동안 KISTI에서 근무하고 있다. 데이터,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활약했다. 2008년부터 9년 동안 NTIS 사업단장으로 있었고, 국가과학기술데이터본부장직도 맡았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과학기술정책 전공 책임교수, 차세대 정보컴퓨팅기술개발 사업추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빅데이터 민간 합동 태스크포스(TF) 위원,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장도 지냈다. 한국융합학회 상임고문, 한국기술혁신학회장, 한국콘텐츠학회 부회장, 한국정보관리학회 부회장 등 학회 임원도 거쳤다.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장도 지냈다.

<표> 슈퍼컴퓨터의 사회간접자본 역할

<표>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을 활용한 주요 연구성과 사례

<표> 시뮬레이션 대표과제별 필요 컴퓨팅 자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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