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혼란 속에 빠뜨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려보다 당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금리, 환율, 물가폭등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힘든 상황은 G2로 불리는 미-중 갈등, 러시아와 NATO의 동서 갈등에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고 본다. 이런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도 정보통신기술(ICT)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강국으로 성장한 중국과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중국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폭스콘(대만계 중국 소재 세계 최대 제조사)이나 샤오미 같은 IT관련 제조사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보다는 십수억명의 중국인들에게 IT를 경험하게 한 바이두(BaiDu)·알리바바(Alibaba)·텐센트(Tencent) 등 이른바 'BAT'의 급성장과 이를 가능케 한 차이나텔레콤·차이나모바일 등 ICT 인프라 및 서비스, 그 뒤의 화웨이와 같은 거대 통신장비 회사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ICT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IT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이를 자국의 경쟁력으로 구현할 때 강국으로의 진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옛 소련의 붕괴, 독일 통일, 동유럽의 변화, EU의 탄생 등 급변하는 주변 정세와 통일세로 상징되는 경제적 부담감에도 오랜 시간 길러 온 제조 기술력과 탄탄한 산·학·연 생태계를 바탕으로 한 독일의 재도약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은 ICT 분야에서 외면적으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듯하지만 실제로 5G의 주요 성과라 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을 독일 제조업이 주도했다. 또 북미에 진출한 T-모바일의 모회사인 도이치텔레콤과 세계급송물류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DHL(독일우체국 자회사)처럼 글로벌 네트워크을 구축하고 운영하면서 얻은 여러 경험을 활용한 독일이 EU 최대 경제강국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산·학·연 관점에서 살펴보면 중국은 미국으로 유학 간 여러 학자들이 귀국해서 정부의 도움으로 학계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베이징대, 칭화대, 상하이자오퉁대 등 명문 대학에서 해외 유수 대학들과 경쟁하면서 세계적인 연구소와 기업 등으로 많은 취업생을 배출했다. 이후 '천인계획' '만인계획' 등을 통해 더 많은 우수한 인재들을 중국으로 초청하고 귀국을 유도해서 학계·연구계와 수많은 창업을 포함한 산업계의 인력 구조를 강화시켰다. 이런 과정으로 지금의 화웨이나 BAT 등의 ICT산업계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독일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막스플랑크·헬름홀츠·라이프니츠 등 연구소와 최근 국내 업체와 함께 6G㎔ 원거리 통신을 시연해서 더 널리 알려진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중심이 돼 학계·산업계의 연구 활동을 이끌어 왔다. 유명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산업체 연구원과 대학교 교직을 까다로운 규제 없이 쉽게 옮겨 다니며 학문적인 연구와 실질적인 개발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이어 간 점과 마에스터(Meister) 제도를 통한 산업인력 양성정책 등이 독일 ICT 융합을 포함한 산업 전반에 걸친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한국은 많은 연구개발 자금이 투입됐음에도 실질적인 성공사례가 별로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이는 아마도 연구개발의 낮은 상용화 성공 빈도, 시조에 따른 잦은 테마의 변화, 보고용 단기성과물 중심 때문인 듯 싶다. 더 늦기 전에 기초 교육과 심화 교육, 연구개발 및 사업화가 '따로 또 같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원이 적은 신임 교원의 산·학·연 과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추가 지원, 모범사례인 의료기기 분야와 같이 ICT 융합 산·학·연 연구에 대한 범부처 통합지원체계, SRC·ERC의 결과물 기술 이전 시 중소기업의 해당 사업에 대한 재창업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 또 무엇보다 취업난과 인력난 공존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맞춤형 이원화 교육과 산·학·연을 연동한 탄력적 인력지원 체계 수립 등이 이뤄져야 한다.
정보통신 경쟁력이 없이는 강국으로의 성장도 불가능하다는 것과 함께 5G를 기점으로는 정보통신 경쟁력이 인터넷 속도만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산·학·연이 상생 정신으로 ICT 융합 분야에 대한 연구 및 사업화를 함께 시도하고, 정부도 산·학·연의 특성에 맞도록 유연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면 다가오는 6G 시대에는 다시 대한민국이 정보통신 최대 강국으로서 G7을 넘어 G5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장선 팬옵틱스 대표이사(한국전자파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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