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상)사피엔스 관점에서 바라본 5차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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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인 유발 노아 하라리는 2014년 '사피엔스', 2016년 '호모데우스'의 잇따른 출간으로 세계 지성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본 시론에서는 사피엔스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룬 새로운 과학기술 세계를 제5차 산업혁명 진행 경로, 호모데우스의 세계관을 제5차 산업혁명의 도전과제로 보고 2회에 걸쳐 다룬다.

사피엔스는 지구 지배자가 돼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현생인류 일대기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의 프레임으로 역동적인 거대사로 엮어냈다. 호모데우스는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한 인류가 새로운 야망인 불멸, 지복을 추구하며 스스로 신성을 획득하려는 자신의 미래를 다루었다. 하라리는 아프리카 동쪽 변방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사피엔스가 지구생태계의 최정점에서 문명을 구축하게 된 것은 '인지혁명(The Cognitive Revolution)'에서 비롯됐다는 독창적인 역사관을 펼친다. 하라리에 의하면 7만년 전 인지혁명으로 사피엔스는 똑똑해지고 거대한 힘을 가지게 됐다. 사피엔스만이 언어를 획득하고 새로운 사고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문화를 일구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언어를 구사하게 됨으로써 인류는 낯선 다수의 사람과 협력하며,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 벌이나 개미도 다수가 협력을 하지만 그것은 근친자에게 한정돼 있고, 그들의 행동은 진화에 의해 프로그램돼 있어 유연성이 결여돼 있다.

7만년 전 인지혁명 1.0, 21세기 인지혁명 2.0

사피엔스가 아니고선 갖지 못한 유일한 능력이 바로 상상력이다. 사피엔스만이 7만년 전에 인지혁명을 촉발해, 허구 다시 말해서 가공의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게 됐다. 이로써 객관적 현실세계뿐만 아니라 주관적 세계, 그것도 수억명이 공유하는 공동주관적 상상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라리에 의하면 1만년 전 농업혁명, 500년 전 과학혁명도 인지혁명의 연장선 상에 있다. 과학혁명은 250년 전 산업혁명, 50년 전 정보혁명을 거치면서 유사 이래 인류를 괴롭혀온 기아, 역병, 전쟁을 그럭저럭 극복하게 됐다고 본다. 성공은 야망을 낳는다. 지금 사피엔스는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공학으로 제2의 인지혁명을 촉발시켜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혁을 불러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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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인류는 데이터교 신봉과 더불어 만물인터넷 파도에 휩쓸리면서 사상 유례없는 불평등 계급사회를 잉태할 수 있다. 수렵채집 시대 사피엔스는 유전자 돌연변이로 약간의 DNA 변화와 뇌 내부 배선 변경으로 인지혁명 1.0이 일어났다. 인지혁명 2.0은 21세기에 걸쳐 유전자 공학과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에 따라 의도적으로 현 생인류의 DNA 추가 변경과 뇌 회선 재구성 등으로 유발될 것으로 하라리는 주장한다. 필자는 유전자 공학과 AI기술 등에 의한 산업구조의 패러다임 전환과 사회문제 해결 기여 등을 제5차 산업혁명으로 규정한다.

인지혁명 2.0은 '제5차 산업혁명'

배경에는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정보기술(IT) 및 AI 그리고 바이오 기술 융합에 따른 두 갈래의 테크놀로지 진보가 있다. 하나는 생물이 가진 기능을 유전자 레벨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명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 기능을 발현하는데 필요한 생물 세포를 컴퓨터에서 설계하고 이것을 실제로 유전자 변형세포로써 만들어내는 방법을 손에 넣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EU 등 선진 각국은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발전과 바이오 기술에 의해 촉발되고 있는 잠재력에 주목해 바이오 경제전략에 야심차게 대처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IoT나 로봇 등이 IT·AI 기술과 융합됨으로써 제4차 산업혁명이 가속됐다. 이에 반해 지금은 바이오 기술(생명)이 차세대 IT·AI 기술을 만나면서 새로운 산업의 지평이 열리는 제5차 산업혁명의 막이 열리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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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이 IoT와 로봇 등 무기물과 IT·AI 기술의 조합이라면, 제5차 산업혁명은 바이오 기술, 유전자 변형 생물세포(Smart Cell)와 같은 유기물과 차세대 IT·AI 기술의 조합에 의한 바이오 경제사회로 대전환이다. 이 관점에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제시하고 있는 제2의 인지혁명에 의한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공학은 제5차 산업혁명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현생 인류는 이후 어떠한 세계를 지향하게 될까?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마지막 장에서 대담한 반전을 시도한다. 사피엔스의 미래는 지금까지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류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고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한계를 돌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 시대에서 지적설계 시대로

하라리는 인류 스스로 한계를 초월하는 생물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공학 세 가지 모두 자연선택의 대체라고 본다. 세 가지 공학의 힘은 지구상에서 생명이 탄생한 이래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혁명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그 결과 사피엔스는 머지않아 특이점에 이른다. 그것은 우리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모든 것이 의미를 갖지 않게 되는 시점, 테크놀로지나 조직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 의식과 정체성의 근본 변화도 발생하는 국면이다. 이로 말미암아 사피엔스가 더이상 유일한 인류종이지 않게 되는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미래의 테크놀로지는 사피엔스 그 자체를 바꾸고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감정과 욕망을 갖게 할 수 있다.

과학혁명 전개로 사피엔스는 자연선택 시대에서 지적설계 시대로 이행한다. 지난 40억년 동안 모든 생명은 자연선택 법칙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자연선택이 아닌 지적설계가 지배하는 우주적 새 시대로 진입한다.

근거로 가속되는 과학혁명의 결과 유전공학이 발명돼 세포나 세포핵 레벨로 생명 구조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선택을 지적설계로 대체하고 생물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공학의 힘으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려 하고 있다. 세 가지 공학으로 유발되는 혁명을 제5차 산업혁명의 지렛대로 본다.

4차 산업혁명의 기축인 IoT와 로봇, 빅데이터라는 무기물이 IT와 AI 기술의 대동맹에 의한 무기체 산업혁명이었다. 이에 반해 5차 산업혁명의 기축은 유전자공학, 생명공학 등 유기물이 차세대 IT와 진보된 AI 기술 대융합에 의한 새로운 차원의 유기체 산업혁명이 될 것으로 본다.

제5차 산업혁명 경로

먼저 5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생물공학을 살펴보자. 생명공학의 대전제는 현재 사피엔스라는 신체가 진화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하라리는 생명공학의 힘으로 다시 한번 사피엔스의 유전자 코드를 바꾸고, 그 결과 뇌의 회로 배선을 바꿔 생화학적 호르몬 균형을 변경하면 멋진 제2의 인지혁명이 도래할 수 있다는 상상을 펼친다. 21세기 인지혁명은 현재의 사피엔스와 다른 생명공학적 신인류를 탄생시킬 수 있다. 둘째 사이보그 공학은 생명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기술이다. 여기서는 현재의 유기적인 신체만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사이보그는 생물과 무생물을 부분적으로 합친 존재이다. 유기적 신체와 비유기적 신체 조합이다. 600만불의 사나이를 만들 수 있고, 주기적으로 신체 장기나 감각기관을 바꾸어가면서 영원히 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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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생명의 법칙을 바꾸는 제3의 법칙은 완전히 무생물적인 존재를 제작하는 비유기체 공학이다. 여기서는 현재 유기적 뇌만이 인간의 사령통제 센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유기적 부분을 모조리 없애고 완전히 비유기적 생물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현재의 유기적 생명을 비유기적 생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컴퓨터 속에 디지털 마음을 창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저자는 사피엔스는 과학혁명 흐름을 중단시킬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오직 우리에게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과학이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지금까지 세 차례 산업혁명과 작금의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에 혁신을 일으키며 인간의 힘을 증강시키고 산업구조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체공학은 대상이 도구가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영향을 주어 자신을 확장 혹은 개조함으로써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역으로 진입하려 하고 있다. 제5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첨단 과학혁명과 연계할 때 '사피엔스'의 마지막 문단은 당면과제로서 우리의 정체성에 숙연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젠 우리는 인지혁명 2.0이 안겨줄 근원 질문에 대해 자연과학자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자가 함께 지혜를 모아 해법을 모색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히 테크놀로지 문제를 넘어서 인류의 생존과 존엄성 그 자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원규 미래학자·디지털 토굴인hawongyu@gmail.com

<필자 소개>

하원규 미래학자는 디지털 토굴인·한국시스템다이내믹스학회 고문·행안부 지능형서비스분과 위원. 대학시절 로마클럽 '성장의 한계' 보고서를 접하면서 미래학자의 길을 시작했다. 1985년 중앙일보와 삼성전자가 공동으로 주관한 '21세기 논문대상(논문명 인간과 기계의 상호수렴과 대응과제)'을 받았고, 1992년에는 박사논문 'ICT패러다임 전환과 국가전략'으로 일본 정보통신보급재단 인문사회과학상에 선정됐다. 35년동안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초고속정보통신기반 구상(체신부 장관상), 사이버 코리아(정보통신부 장관상), e-Korea(국무총리상), u-Korea(철탑산업훈장), 만물지능통신기반 중장기 전략 관련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디지털 혁신국가 어젠다를 발굴·기획했다. 2015년 정년퇴직 기념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세계 최초로 출간했다. 현재는 2040년을 사정권에 넣은 '제5차 산업혁명'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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